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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06. 2023

당신은 글을 어떻게 쓰나요?

 사람들은 글을 어떻게 쓸까? 뜬금없이 다른 이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시중에는 글쓰기 작법에 관한 책이 넘쳐나지만, 정말 알고 싶은 것은 그런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글쓰기의 시작’이다. 이런 호기심이 든 것은 며칠 전에 <유퀴즈>에서 K-pop 거장 박진영과 방시혁 편을 보고 난 이후부터였다. 그들은 우리나라 한류를 이끌어가는 기획사들의 수장답게 방송에서 강조하는 경력과 재산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누구나 궁금해하는 그런 화려함보다 그들이 평소 창작하고 작곡하는 방식이 더 궁금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박진영은 흔히 말하는 ‘천재형’ 작곡가이다. 그는 순간적인 영감을 받아 창조하는 아티스트이다. 박진영은 어떤 곡이 떠오르면 ‘춤, 가사, 멜로디’가 동시에 생각난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재수없다'고 여기는 타입이다. 반면, 방세혁은 처음에는 피아노 건반에서 두들기며 멜로디를 엮어가는 스타일이다. 이른바 가사와 멜로디를 하나하나 조합하며 엮어가는 계획형 인간이다. 그는 영감을 받아서 가사를 쓰고 작곡한다기보다는 계산적으로 모든 가사와 멜로디를 채워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흠모하고 따라 하고 싶은 창조의 모습은 작곡가 박진영의 방식이다. 나 역시도 순간적인 영감을 잡아서 일필휘지로 ‘멋지게’ 글을 완성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나의 글쓰기 방법은 두서없는 채집형이다. 한 가지 단어에 꽂히면 계속 그 단어들을 머릿속으로 굴리는 편이다. 글의 구조와 개요를 따로 잡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폭발적으로 글들을 쏟아내지도 못한다. 컴퓨터 타자 위에서 지웠다 썼다가 하면서 비굴하게 눈덩이 굴리듯이 글감을 채워 나간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천재들의 창조하는 모습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현실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천천히 머뭇거리며 컴퓨터 타자를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영감을 받아 창조하는 천재들의 글쓰기 방식은 글 쓰는 행위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행위로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 그리는 천재적인 작가들은 순간적인 영감을 받아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비범함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고, 천재들의 괴팍함과 비이성적인 행동도 모두 용납이 된다. 원래 천재들은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이런 천재형의 작가들이 드물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글쓰기 작법, 책에서는 ‘일단 쓰고’, ‘글쓰기 습관을 들이고’, ‘순간적인 영감을 무작정 기다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7년의 밤>으로 유명한 정유정 작가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그녀의 글쓰기 방법을 공개했다. 그 책에는 기대했던 ‘천재 작가’를 만드는 일급 비법은 없었다. 그저 소설의 소재를 정하고 개요를 쓰고, 자료를 조사하고, 배경을 설정하고, 등장인물을 창조하고, 초고를 쓰는 등 반복적이고 단순노동에 가까운 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정유정 작가는 본인이 영감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어떤 질문’”(p.83)으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 질문에 사로잡히면 몇 날 며칠 ‘답 찾기’에 몰두하는 시간이다. 겨우 작품을 완성하고 난 후에도 그녀의 노력은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질문으로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또다시 ‘90프로를 버려야 하는’ 잔인하고 지루한 퇴고의 과정이다.


 예전에 동료 선생님들과 학교 글쓰기 수업을 준비하다가 ‘글쓰기 틀’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이 오갈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빈 백지를 두고 바로 글을 쓰라고 하면 너무 어려우니, 약간의 글쓰기 틀을 주고서 생각을 열어주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들을 접하면 괜스레 반발심이 생긴다. 글쓰기는 기계적인 활동이 아니라 특별한 창조의 영역이어야만 한다는 나의 ‘똥고집’ 때문이다. 글쓰기는 혼자서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며 습작하는 모든 스트레스의 최고 종착점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글쓰기의 지름길을 갈구하지만, 그 비법은 오로지 나만 알고 싶다. 완전 ‘놀부 심보’이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눈을 뜨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로 시작한다. 이런저런 기사를 뒤적거리기도 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취해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글이 잘 써지는 순간은 누군가를 향해 분노와 스트레스를 폭발시킬 때이다. 그때만큼은 한 시간이 넘도록 일필휘지로 쉴 새 없이 글이 써졌다. 잠깐 내가 감정이 흘러넘치는 ‘천재 작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글쓰기는 남에게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일기’와 같은 글이다. 타인 앞에 나서는 글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욕구와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모든 창작활동이 다 그렇겠지만, ‘나만 좋아하는 내용’이 꼭 모두가 원하는 글이 아니다. 본인의 글 쓰는 주제와 다른 사람들의 읽고 싶은 욕구가 부딪칠 때 그 글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아직은 ‘남을 위한 글쓰기’와 ‘나를 위한 글쓰기’가 혼재된 상태다. 그래서 다양한 주제로 하루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리며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글쓰기의 첫 시작을 어떻게 시도하는지 말이다. 이미 완성된 글로는 그들의 글쓰기 방식을 가늠하기 어렵다. 나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며 글을 쓰는 데도 항상 후회가 남는지, 아니면 천재적인 영감을 얻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도 멋진 작품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세상에 천재형 작가들이 너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에서만큼은 평등한 세상이 이루어져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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