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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17. 2023

글에 힘을 빼다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치기 시작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힘을 빼라'라는 지적이다. 꼿꼿하게 세워진 손가락들의 힘을 풀고 경직된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피아노를 잘 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의 조언을 들어도 잘 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몸의 긴장을 풀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계속 힘을 주며 피아노를 치다 보면 자꾸만 틀리는 음정과 결국 빳빳하게 굳은 목과 손가락만 남는다. 이제는 더 이상 피아노 악보와 피아노는 쳐다보기도 싫다. 결국 ‘난 원래 피아노에 재능이 없어.’라는 강한 실망감으로 피아노 배우기를 멈춘다. 그저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힘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이 중에서 ‘일이나 활동에 도움이나 의지가 되는 것’의 뜻을 지닌 힘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분명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힘은 꼭 필요한 조건이지만, 때로는 실패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떡국을 예로 들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떡국을 만들 때 떡국떡은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재료이지만, 딱딱한 떡국떡은 미리 물에 불리는 단계가 꼭 필요하다. 단단한 떡국떡을 물에 불리면 훨씬 맛있고 씹기 좋은 떡국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힘은 어떤 일을 할 때 곡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 힘이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힘을 빼야 한다는 조언은 모든 일에 통하는 만능열쇠이다. 강의든, 노래든, 시험이든, 사람을 대할 때든,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긴장은 필요하지만, 너무 큰 긴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큰일을 앞두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 때문에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어느 정도 생각을 고치고 다듬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런 시간이 너무 길어질 때는 쉽게 피로함을 느끼기 쉽다.


 글쓰기를 처음 배울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우선 지금 생각나는 대로 쓰라'라는 조언이다. 이 글의 맞춤법, 이야기의 소재가 좋은지, 주제가 괜찮은지 생각하지 말고 일단 쓰라는 말이다. 우선 생각의 흐름대로, 이런저런 주제로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한 편 완성된다. 글을 고치는 것은 그다음 단계이다. 우선 써야 뭐든지 고칠 수 있는 내용이 생긴다. 그런데 매번 ‘천 리 길’을 단숨에 가려다 보니 자꾸만 시작 단계부터 삐걱거리게 된다. 마음이 이미 저 멀리 있는 목표지점에 있으니, 출발점에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아직 첫발을 떼기도 전에 지친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는 2가지 순간은 '내 글이 너무 형편없어 보일 때'와 '더는 글 소재가 생각나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글 소재는 너무 잘 쓰고 싶다는 마음, 특이하고 독창적인 것을 꼭 쓰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오고 가며 부딪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감정들 등등 세상에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은데 글을 쓸만한 소재가 고갈되겠는가? 그럼에도 글 쓸 소재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너무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이다. 이 소재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써서 쓰기 싫고, 저 소재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꺼리다 보면 어느 순간 글쓰기 소재의 외딴섬에 갇혀 둥둥 떠 있다. 무슨 좋은 소재가 없을까 여기저기 낚시질하면서 말이다.


 신기하고 참신한 소재로 쓴 글이 참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소재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은 글을 쓴 작가들을 보면 쫓아다니며 어떻게 이런 소재를 찾았는지 묻고 싶다. 어디서 그런 상상력을 키웠는지도 말이다. 특별한 경험을 가진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저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글들, 많은 감동과 재미를 주는 글들은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경험으로 무장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식상하다고 넘긴 소재들에 약간의 양념을 더한 글이다. 예전에 애니메이션 ‘슈렉’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싫증이 난 ‘영웅과 공주’의 캐릭터의 성격에 뜻밖의 반전을 추가했기 때문이었다. 만화영화 ‘겨울왕국’ 역시 누구나 예상할 만한 결말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 흘렀기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어쩌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에 다시없을 좋은 소재를 찾아 쓰기보다는 기존의 소재에서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 또 글에 힘을 빼고 싶다. 요즘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 자꾸만 쓰고 있는 글에 힘이 들어간다. 글 욕심이 앞서니 어떨 때는 글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 어떨 때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글, 어떨 때는 진지하게 사회를 논할 수 있는 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파도처럼 출렁이며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어떤 소재든 주어지기만 하면 즉석에서 바로 일필휘지로 글을 쓸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오려나? 또 한 번의 푸념을 오늘의 글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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