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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08. 2023

관광객들의 호기심이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마을을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운 풍경에 끌린다. 방송에서 아름다운 장소를 볼 때마다 ‘죽기 전에는 꼭 가봐야지’라며 꼭 메모를 해둔다. 그렇게 마음속에 저장해 둔 나만의 명소들이 여러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지에 가서 좋은 풍경을 보고, 함께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그런 것들이 언제나 꿈꾸는 소소한 행복이다. 그런데, 며칠 전 신경 쓰이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유럽의 작은 마을이 한 영화의 배경으로 소개된 이후, 관광객들의 잦은 방문으로 인해 주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신문(2023년 8월 28일, 임병선 기자)에 따르면, 할슈타트 마을 주민 700여 명은 관광객들이 하루 만 명이 찾아오며 일상생활을 거의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쉴 새 없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사람들의 소음으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하루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고 오후 5시 이후 단체관광객 버스를 들이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 많은 관광객이 대형 코치 버스를 타고 와서 휙 둘러보고 숙박하지도 않고 곧바로 떠” 나기에 실질적인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만드는 소음공해와 함께 차량정체로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고, 개인 프라이버시 역시 보장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할슈타트 마을은 오스트리아 유명 관광지이자,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이다. 이 마을은 2006년 KBS2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 아시아에서 유명세를 치렀다. 그 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아렌달 마을의 배경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만화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두 여주인공의 아름다운 노래 못지않게 그녀들이 살던 ‘겨울왕국’의 신비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소박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동화 같은 마을 풍경 역시 영화의 인기를 드높이는 데 한몫했다.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이런 문제들은 비단 유럽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의 유명한 관광지인 북촌마을 주민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2023년 11월 5일에 방송한 YTN 뉴스(권준수 기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 매일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인한 스트레스를 참지 못한 주민들이 한옥마을을 떠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주민이 10% 넘게 줄었고”, “10년 전과 비교하면 4명 가운데 1명이 한옥마을”을 떠났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지자체가 “관광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제한”하고, “특정 요일은 방문하지 말라는 팻말을 여기저기 내걸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런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진기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은 관광객들의 욕구와 자기 공간에서 편하게 살고 싶은 주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관광수익만을 생각해서 마냥 주민들에게 참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관광객들이 오스트리아의 할슈르트,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유명하고 아름다운 드라마 촬영지이자 관광지여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동화같이 아름다운 전통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역시 보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인공적인 풍경만을 원했다면 사진이나 드라마 세트로 충분했을 것이다.


 몇십 년 전, 대학생 시절, 교수님과 동기들과 함께 문학기행으로 경상북도에 있는 한 전통 마을을 방문했다. 아주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돋보였던 그 마을은 오래된 역사의 운치로 더욱 마음이 묵직해지던 곳이었다. 당시 몹시 더운 여름이었는데, 문학기행을 인솔하던 학과 선배는 마을 어르신들이 밤늦은 소음과 학생들의 짧은 옷차림에 민감하니 조심하라고 전해 주었다. 우리는 긴바지를 챙겨 입은 채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그곳을 둘러봤다. 둥글게 마을을 감싸 안고 도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에 깊이 담았다.


 그때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고 싶어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다시 그 마을을 방문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첫 방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마을은 내 기억 속의 풍경과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고즈넉한 전통 마을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여기저기 관광객들의 돈을 끌어모으는 상업적인 관광지로 변해있었다. 근엄하게 학생들을 바라보던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사라지고 입장료를 받는 장소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을 포토 존만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젊은 청춘을 감동시켰던 그 시간은 모두 사라졌다. 옛날에 느꼈던 아름다운 추억은 오로지 마음속에 품은 채 다시 마을을 방문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름다운 곳을 보고 싶은 관광객들의 호기심과 자기 장소에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을 주민들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 알 수 없다. 내가 마을 주민이라면 개인 프라이버시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의 입장이 된다면 당연히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힐끔힐끔 주민들의 삶을 엿보면서 말이다.


 사람들의 마을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이유는 단지 풍경과 건물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속에서 사는 주민들의 생활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삶을 엿보며 관광객들은 대리 체험을 한다. ‘만일 내가 이곳에서 산다면 어떨까?’라는 생각 하면서 말이다. 그런 주민들이 없는 마을은 그저 드라마 세트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무도 살지 않고 포토 존만 가득한 유령마을이 안되기 위해서라도 관광지의 문제들은 꼭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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