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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13. 2023

겉 보기에 예쁜 귤, 그 너머에 있었던 일들

 주말 내내 감기 때문에 콜록대는 둘째가 신경 쓰여 마트에 들렀다. 비타민 C가 풍부한 귤이라도 많이 먹으면 원기 회복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마트에 들어가니 소비욕구를 부르는 흥겨운 음악들이 귓가를 맴돈다. 식품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가판대 위에 황금빛 귤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금주의 할인’이라는 빨간색의 커다란 문구가 눈에 잘 띈다. 매장의 눈부신 전기 불빛에 반짝이는 귤들의 모양새가 무척 탐스럽고 맛있어 보인다.


  마침 가격도 적당한 듯싶어 고르려는데 바로 옆 구석 공간에 웬 못생긴 귤 뭉치가 보인다.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흠집도 많아 보이는 귤이다.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 위에는 ‘제주 친환경 감귤’, 토착 미생물을 활용하여 키웠다는 문구와 함께 할아버지의 사진이 붙여져 있다. ‘친환경’이라는 문구는 마음에 쏙 들지만, 귤 모양새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앞서 봤던 반들반들하고 예쁜 황금빛 귤과는 다르게 표면이 거칠고, 소비욕을 자극하는 균일한 황금빛이 아니라 까만 반점과 초록색 반점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괜히 몇 번이고 못생긴 귤 상자를 들었다 놓았다. 바로 옆에 놓인 예쁜 귤을 쳐다보며 한참을 귤 가판대에서 서성거렸다.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면 친환경 귤을 고르는 것이 맞지만, 괜히 샀다가 정작 맛이 없으면 얼마 먹지 못하고 모두 버릴 것 같다. ‘그래, 친환경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농약을 좀 쳤을지도 몰라.’라고 읊조린다. 담 너머에 있는 신 포도를 본 여우처럼 말이다. 모양이 이쁘고 세일을 하는 귤 상자를 집었다가 다시 마음을 바꿨다. ‘그래, 한번, 이 할아버지의 얼굴을 믿고 사 보지 뭐.’라며 결국 친환경 귤을 사 들고 집으로 왔다.


 보통 때라면 할인판매를 하는 귤 상자를 별 고민 없이 집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읽고 있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의 내용들을 떠올리니 ‘보기 좋은 과일’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다. 책 속에서 언급된 내용처럼, 자꾸만 편리하다는 이유로 마구 살포되는 농약들이 두렵고 그 이후에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공포스럽다.


 농사를 조금이라도 지어본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조금만 눈을 떼면 무성하게 올라오는 잡초들, 해충들 때문에 대량의 농약 없이는 농사짓기가 무척 힘들다고들 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약을 치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친환경 농사, 저농약 농사의 과정은 너무도 번거롭고 힘든 일이기에 예쁘고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먹기 위해서 농약이 들어간 결과물쯤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농약이 묻어 있는 저렴한 농산물을 사고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채소나 과일들을 식초로 헹구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 어설픈 노력이 농약을 없애는 데에 얼마 큼의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침묵의 봄>에서 저자 레이첼 카슨은 잠깐의 편리함과 몇몇 해충들을 박멸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뿌려지는 살충제들이 해충과 잡초들뿐만 아니라 토양과 풀을 먹는 동물들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녀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살충제의 진실들은 참혹하고 잔인하다. 레이첼은 이런 살충제와 화학물질들을 뿌리는 행동은 그리스 신화에서 메데아가 연적을 죽이기 위해 사용한 독물의 웨딩드레스와 같다고 말한다. 메데아의 연적은 이 드레스를 잠깐 걸치고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때깔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침투성 살충제가 식물이나 동물체에 흡수되면 메데아의 옷처럼 강한 독성을 발휘한다. 마치 간접 살인처럼 말이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미래 역사학자들이 “지성을 갖춘 인간이 원치 않는 몇 종류의 곤충을 없애기 위해 자연환경 전부를 오염시키고 그 자신까지 질병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할 것” (p.33) <침묵의 봄>이라고 덧붙였다.


 살충제에 대한 잔인한 폭로들이 담긴 <침묵의 봄>을 며칠 새 읽고 있노라면 마트에서 파는 모든 농작물이 실은 농약에 푹 절여서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병이 생긴다. 그런 농약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자꾸만 올라오는 큰애의 두드러기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를 앓는 둘째의 체력 약화도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이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사용한 화학약품의 결과물로 생긴 것은 아닌지 무섭다.


 그럼에도, 마트에서 못생긴 채소나 과일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보기 좋은 예쁜 과일과 채소들에 어마어마한 농약들이 뿌려진 결과물일 것이라 예상하지만, 탐스러운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그냥 그 이면의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싶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완성된 요리에만 통하는 명언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생산자들도 판매자들도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친환경보다는 대용량 농약 살포하며 겉보기에 예쁘고 풍성해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기에 노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빛깔이 좋은 농산물을 원하니까 말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사 들고 온 못생긴 귤, 하나 까서 먹어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기존에 먹었던 예쁜 귤처럼 아주 새콤달콤하고 달콤한 귤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먹을 만하다. 레이첼 카슨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대신 자연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가지면서 모든 생태계의 질서는 사라졌다고 말한다. 채소와 과일의 모양새는 사람이 섭취하는 것에 전혀 지장이 없는데, 좀 더 보기 좋은 것들을 추구하는 마음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그녀는 모든 해결의 열쇠는 그 이면의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 (p.180) 한다면 바뀔 수 있는 희망은 있다고 말이다. 장 로스탕(Jean Rostand)의 말처럼,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p.38)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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