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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16. 2023

2023년 수능 전날 밤, 그날을 기다리며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수능 전날 밤이다. 여기저기서 전해져 오는 수능 응원 메시지들을 읽고 답하면서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깜깜한 밤이 되니 보통 때보다 더 조용히 가라앉는다. 일을 하려고 억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보지만 사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2년에 걸쳐 이어진 대한민국 교육과정의 최고봉인 수능이 코 앞이다. 오로지 이 시험만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온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한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두렵고 불안해할 사람은 아들일 텐데,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내가 왜 이렇게 긴장이 되고 마음이 복잡할까?


 어릴 때부터 듬직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큰 애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편하게 방학을 쉰 적이 없다. 아이는 영재고와 과고를 준비했던 동급생들에 비해 학과 과목들의 선행이 한참 부족한 상태로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1 첫 시험에서 생전 처음 받아보는 점수로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그때부터 큰애는 원하는 고지로 달려가기 위해 묵묵히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지루한 고행의 시간을 가졌다. 아들은 3년 내내 혼자만의 아주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조금씩 성장했다.


 큰애가 기숙사 학교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올 때마다 아무 내색 없이 웃으며 항상 “괜찮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들이 고3이 된 후 뒤늦게 귓속에 난 잦은 상처와 진물들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큰 애는 놀란 엄마를 안심시키며 학교 학습실에서 종일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인터넷 강의 수업을 듣다 보니 귓속에 상처가 났다고 말했다. 아들은 고2 겨울방학부터 모든 학원을 다 끊고 혼자 인터넷 강의 수업을 듣고 문제집을 풀며 올해 수능을 준비했던 터였다. 대부분의 학교 친구는 대치동 학원에 다니면서 많은 도움을 받는데 큰애는 혼자서 수능을 준비하며,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공부했던 걸까? 그동안 아들이 했던 모든 노력과 마음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아들은 아무 준비 없이 내신 따기 힘든 지금의 기숙사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지난 3년 동안 내신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아 좌절도 많이 하고 혼자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점점 단단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그저 품 안에 있을 때는 천상 아이였는데, 3년이 되고 나니 눈빛이 단단해지고 철이 들었다. 어느 순간 집안 경제 사정을 생각해서 본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찾는 아이가 되었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큰 소리로 노래 부르기와 게임을 좋아하는 철부지 소년의 모습이 가득한데 말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던 고등학교 3년 동안 큰애는 훌쩍 커 버린 키만큼 마음의 깊이도 헤아릴 수 없이 깊어져 버렸다.


 저녁 무렵에 큰 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긴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아마도 모든 학부모에게 단체 문자를 보낸 듯싶었다. 큰 애 선생님은 ‘그동안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너무 고생 많았다’라는 안부 인사와 함께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지금 누구보다 떨리고 고생한 사람은 아이들이니 내일 만나면 무조건 ‘너무 고생했다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해주길 당부했다. 그중에서 가장 뭉클했던 몇 문장들이다.

 "제가 14년 고3 담임을 하면서 올해처럼 마지막 그날까지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아이들은 없었거든요. (중략) 저도 가끔 울컥울컥 했답니다. 19살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시험의 압박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이를 통해서 성장하고 커나갈 우리 아이들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큰애가 맞이할 기쁨의 순간을 꿈꾸며 하얀 ‘소원 성취’ 양초 하나를 켰다. 조금씩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경건한 마음으로 나의 소원을 빌어 본다. 제발 아이가 아는 문제들만 나오기를, 부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마음 편하게 시험을 잘 풀 수 있기를.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 부모가 이런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는 고3 수험기간은 아이가 안락했던 부모 품속에 벗어나 날아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자 부모 역시 아이들 없이 홀로서기 위한 독립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12년 동안 정성껏 수능만을 향해 돌진했다면, 부모 역시 19년 동안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달려온 시간이었다.


 수능 전날, 이렇게 마음속에 불안함과 헛헛함이 가득한 이유는 아마도 앞으로 맞이할 변화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고생한 큰애가 안쓰럽고, 동시에 아이를 독립시켜야 할 그 순간이 섭섭한 탓이다. 수능 이후 아이에게도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만큼, 아이들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부모에게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이 앞으로 펼쳐진다. 그날이 오면 어떤 표정으로 맞이하면 좋을까? 그저 홀가분할까? 아니면 섭섭할까? 마음이 복잡한 수능 전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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