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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18. 2023

수능이 끝난 후 벌어지는 일들

 올해 수능이 끝났다. 하지만 대한민국 입시 수험생의 일은 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입시 과정이 끝난 게 아니다. 시험이 끝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입시전쟁이 시작된다. 수능은 그 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 단계이다. 원하는 대학 관문을 뚫기 위해서는 그 두꺼운 벽을 박살 낼 만한 많은 점수의 총알이 필요하다. 만약 수능이 끝난 후 유독 여유 있는 수험생이 있다면 두 가지 경우이다. 수능 대박으로 2차전 ‘정시’를 거뜬히 뚫을 만한 높은 점수를 확보했거나 아니면 올해 입시를 포기하고 재수를 준비하는 경우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능 다음 날 바로 진행되는 수시 면접과 논술 시험에 숨 가쁘게 뛰어들어야 한다.


  2024년도 수능은 참 요상한 시험이었다. 역대 최고로 N수생, 재수생들이 몰려들어 수험생들의 경쟁률은 어마어마했고, 시험의 난이도 역시 ‘불수능’이라고 불릴 만큼 어려웠다. 본격적인 무대가 열리기 전, 문제출제위원장은 이번 수능이 킬러문항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많은 학원 전문가는 ‘쉬운 시험이 되리라 추측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능을 치른 학생들의 마음은 더 혼란스러웠다. 높으신 분의 갑작스러운 문제 유형 지시 이후 바뀐 6월 모의고사와도, 마지막 표준 지표가 될 9월 모의고사의 문제 유형과는 너무 달랐다. 첫 번째 시험은 너무 어려웠고, 마지막 시험은 무척 쉬웠다. 출제위원들도 역시 고3 아이들을 마루타 삼아 시험 난이도 조절을 하며 오락가락한 눈치였다.


 그런 실험 속에서 유독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은 역시 현역 고3들이었다. 그들은 올해 수능을 치르기 단 몇 개월 전, 갑자기 바뀐 수능 시험 유형에 놀라면서도 적응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숨 가쁘게 내신과 수행을 챙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이미 수능을 경험 한 재수생, N수생들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수능 시험에서 현역 고등학생들보다 일 년을 넘게 공부한 재수생, N수생들이 유리하다는 것은 입시의 정설이었다. 아마도 고3 아이들은 가까스로 다다른 가파른 산꼭대기에서 갑작스레 밀려드는 엄청난 재수생들의 인파를 보며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의연해지려 노력해도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기가 죽었다. 아마도 이번 수능을 치른 후 대부분 고3 아이의 집에서는 숨죽인 울음소리가 넘쳐흘렀을 것이다.


 수능을 마친 큰 애 역시 어두운 표정으로 시험장을 나왔다. 시험을 치르며 실수도 있었고, 몇몇 문제는 풀지 못했다. 게다가 재수생들의 대거 유입으로 기존에 수월하게 받았던 시험 등급마저 나오지 않았다. 아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능 점수가 확실하게 나오는 12월까지 논술 시험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또 다른 게릴라 전투의 시작이다.


 한 대학의 논술 시험을 보러 가는 주말, 서울 시내의 도로는 이미 수많은 차로 빽빽했다. 집에서 2시간 일찍 출발했는데도 논술 시험 입실 시간은 간당간당했다. 라디오에서는 이번 주부터 대학마다 논술 고사 때문에 주변 도로 곳곳이 차량 정체로 극심하다는 내용을 여러 차례 방송했다. 운전하는 남편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남편은 원래 운행 시간만을 믿고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고 믿은 터였다. 게다가 서울 시내 도로에 익숙하지 않아 여러 번 헤맸다. 결정적으로 남편이 잘못 길을 들어서는 바람에 도착 예상 시간이 많이 지체되자 큰 애의 입에서 “그냥 이번 논술 시험을 포기할까요?”라는 말이 나왔다. 자책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남편은 다시 마음을 붙잡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길을 찾았고, 단 몇 분만을 남긴 채 큰애는 무사히 논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 주말이면, 또 다른 논술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도전들이 모두 실패로 끝나면 12월의 수능 점수로 또다시 정시를 노려봐야 한다. 이미 수능을 마쳤지만, 안타깝게도 대학을 향하는 입시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닥터스트레지가 계속해서 빠졌던 ’도르마무와의 거래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간의 굴레이다. 참, 대학이 뭐라고, ‘인서울’이 뭐길래 이런 야단법석일까? 하지만, 학벌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기불황이 팽배한 경제 상황에서 이런 대학 학벌마저도 없으면 이 나라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누구도 풀지 못하는 어두운 불안들이 팽배한 사회이다. ‘대학은 선택이요, 학벌은 장식’이라는 허울 좋은 말들은 다음 세상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에 목숨 걸고, 주말의 모든 시간을 헌납하며 논술 고사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우리 아이들만은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저 평범하게 일자리를 가져 돈을 벌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삶이다. 그런 평범한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힘겨운 걸까? 다른 선진국처럼 나라가 보장하는 튼튼한 사회 울타리 속에서 안전한 미래를 꿈꾸고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다. 더 이상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져 가며 많은 사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용쓰고 싶지 않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 대학 학벌의 의미는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돈도, 배경도 없는 소시민의 처지에서 이마저도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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