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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20. 2023

2024학년도 수능 샤프

큰 애 방에 들어서니 못 보던 샤프 하나가 보인다. 투명할 정도로 빛나는 노란빛과 부드러운 곡선의 둥근 몸통이 돋보인다. 볼펜의 몸 쪽에는 옅은 색으로 ‘2024년 대학수학능력 시험’와 ‘한국교육평가원’이라는 글씨가 프린트되어 있다. 아, 이것이 그 유명한 ‘수능 샤프’이구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사진을 한 컷 찍어놓는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수업을 갔던 고등학교에서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는 고2 학생들이 하도 그 샤프를 갖고 싶다고 난리기에 대체 어떤 샤프인지 무척 궁금했던 터였다. 사실 아들에게 수능 샤프가 어떠냐고 물어도 ‘그냥 잘 써진다’라는 한 마디뿐이어서 생김새는 그저 평범한 샤프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예쁘다. 과연 온라인상에서 2024학년도 수능 샤프가 ‘역대급으로 예쁘다’다고 소문이 날만 하다.


 수능 샤프를 봤을 때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레몬 빛과 옅은 노란빛이 감도는 투명한 크리스털 색감이다. 알록달록 많은 색이 샤프의 케이스에 쓰이지 않아 눈이 편안하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이용해 잡는 부분은 은은한 회색빛이 도는 하얀 고무로 감싸져 있다. 실제로 이 샤프로 필기를 해 보니 고무가 있어 손가락이 미끄러지지 않는다. 샤프심도 잘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잘 써진다. 이 정도면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글씨를 써도 피로를 덜 느낄 것 같다. 물론 시험 당일 잔뜩 긴장했을 아들 눈에는 이 샤프의 생김새며 색감이 얼마나 들어왔을까 싶다. 그래서 수능 샤프가 어떠냐는 엄마의 관심 어린 질문에 그냥 “잘 써져요”라는 한마디로 요약하는 거겠지.


 올해 아들의 수능 준비물을 준비하며 가장 이상했던 부분은 ‘절대로 샤프를 따로 준비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샤프심과 수정테이프는 가능하지만, 나머지는 다 현장에서 제공된다고 했다. 핸드폰이나 시계 같은 전자기기의 반입이 금지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샤프까지 준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너무 이상했다. 내가 처음 수능을 치르던 시절만 해도 필기구는 학생들이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후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수험생들의 모든 필기구 반입이 금지된 것은 2005학년도 수능시험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유명 학원 원장들과 학부모와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수능 커닝을 한 사실이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대규모 부정행위의 흑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방법 역시 신통방통다. 학원생들은 학원 원장이 나눠준 초소형 카메라를 부착한 펜으로 문제를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받은 학원 강사는 학생 귀에 설치된 초소형 무전기에 답을 얘기해 주는 방식으로 부정행위가 이뤄졌다. 이 일로 최종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가 되었고, 대리 시험 방지를 위해 OMR 답안지에 필적 확인란 문구와 함께 모든 필기구는 시험장에서 일괄적으로 지급되기 시작했다. ‘역대적으로 예쁘다’라고 찬사 받고, 희귀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수능 샤프는 바로 부정행위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이었다.


 수능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는 엄청나다. 수능 당일 온 국민의 눈길이 쏠리고 시험 결과 하나로 일희일비하는 일이 생긴다. 과연 인생을 결정짓는 단 한 번의 시험이라고도 할만하다. 그러다 보니 수능을 위한 다양한 부정행위 방법이 생겨났고, 시험을 관리하는 감독관들은 더욱 엄격하게 부정행위를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1994년도 첫 수능이 생긴 이후 거의 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수능은 ‘수능 만점’이라는 빛나는 영광의 순간과 온갖 방법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어두운 그림자가 언제나 함께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하는 수능, 양광모 시인은 올해 수능 필적 확인 문구로 쓰인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라는 글귀를 통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그는 수능을 마친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위한 편지로 이렇게 마음을 전한다. '오늘의 작은 실수를 내일의 큰 실패로 만들지 말고 미래를 사랑하고, 자신이 피우고 싶은 꽃을 피우라’라고 말한다. 그의 편지 속에 언급된 글귀처럼, '미래는 공중에 던져진 주사위와 같아서 어떤 숫자가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청춘은 아직 가야 할 날들이 봄철처럼 파릇파릇해서 청춘이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미래, 시험을 마친 청춘들이 술술 잘 써지는 수능 샤프로 인생을 멋지게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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