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Dec 01. 2023

모두가 찬성하는 상황에서 홀로 반대하기, 가능할까?


 때로는 마지못한 선택을 할 경우가 있다. 분명히 내 생각과 판단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변의 상황 때문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우유부단하다’와는 다른 경우이다. 이 경우는 선택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쉽사리 하나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마지못한 결정’은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결정하고 나서도 찜찜함에 계속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요즘 큰 애와 미묘한 감정싸움이 있다. 수능이라는 커다란 시험을 치르고 마음 편히 ‘모셔야’하는 고3님과 무슨 일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그 갈등이 만만치 않다. 아들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쓸 수 있는 현장학습을 내고 집에서 잘 쉬고 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잠을 자고 TV를 보고 낮에 일어나는, 그야말로 모두가 허용해 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그런 생활 때문이라면 아들과 큰 갈등이 없다. 문제는 큰 애가 툭툭 던지는 말 때문에 가끔 기분이 상한다. 요즘 큰 애는 수능만 치르고 나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조리 해치우기 위해 난리다. 그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여행이다. 며칠 전에는 친구들끼리 1박 2일 스키여행을 잡았다고 통보했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하기에 ‘그래’라고 답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번에는 1월에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거의 ‘통보’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이럴 경우,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저 좋은 엄마인 양 웃으며 보내야 할까? 아니면 “안돼”라고 반대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이미 너무도 많은 일들이 벌어져 있었다. 아직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들, 다른 엄마들끼리는 이미 암묵적으로 ‘일본으로 보내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비행기표 예약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여 여기저기서 독촉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했다가는 ‘이상한 엄마’로 낙인이 찍힐 것 같았다.


 모두가 찬성하는 상황에서 홀로 반대 견해면 고독한 섬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남편은 ‘아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겠다’라며 찬성했고, 이왕 보내주는 거면 편하게 보내주자고 했다. 다른 친구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곱게 키우지 말고 견문을 넓히게 하자’고 했다. 다 맞는 말이지만, 그 기회가 예정에도 없는 ‘갑작스러운 일본 여행’ 일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큰 애가 평소에 일본을 무척 가고 싶어 했다거나 일본에 대한 큰 관심이 있었다면 흔쾌히 찬성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너무 즉흥적이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기분을 숨길 수 없다. 큰 애가 주도적으로 여행계획을 짰다면 마음이 좀 달랐을까?


 아마 아들은 엄마가 단지 ‘돈’때문에 그리고 ‘아직 어려서’ 일본 여행을 반대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분명히 큰 애는 무척 서운해할 것이다. 어쩌면 그 이유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들이 누누이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다”라고 주장할 정도면, 행동과 마음도 그것에 맞게 ‘어른스러워지길’ 바랬다. 무작정 일본 여행 가고 싶다고 통보할 것이 아니라, 왜 일본에 가고 싶은지 엄마를 설득하고 여행 비용이 대충 얼마나 들 것 같으니, 자금 형편이 괜찮냐고 상의라도 해 주길 바랐다. 아이가 원하기만 하면 부모는 무조건 들어줘야 하나 싶은 생각에 혼란스럽다.


 아들의 일본 여행, 모두가 찬성하는 상황에서 홀로 반대하기, 가능할까? 사회에서 공적인 입장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여러 인연의 끈들이 끈끈하게 엮여 있는 사적인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내 친구들이 걸리고, 가족들이 걸리고, 아들 친구들이 걸린다. 무엇보다 반대했을 경우, 너무도 실망하고 상처받을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아마도 두고두고 엄마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마음의 앙금이 남은 채로 아들의 여행을 허락할지 모르겠다.


 끝까지 반대를 못 하는 내 마음속에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라는 비겁함이 한가득 숨어 있다.

소심하게 말이다. 아마도 이것도 저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마음으로 아들을 보낼 것 같다. 모두가 “예”하는 상황에서 “선택하고 싶지 않다”도 답이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