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길고 깊었던 2024년 입시 일정이 지난 주말에 모두 끝났다. 이제 결과발표를 향한 피 말리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다음 달 2월 초 최초 합격 결과 소식을 시작으로 ‘추가 합격’에 더불어 또 다른 ‘추추가 합격’까지, 어디선가 걸려 올지 모르는 전화를 숨 가쁘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조바심 나고 힘겨웠던 고3 수험생 엄마로서의 고된 길이 이렇게 허무하게 저물어 가려한다.
저번 주 3장의 정시 원서를 내면서 처음으로 큰 애와 약간의 기싸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시 원서는 가, 나, 다군에 속한 대학에만 원서를 쓸 수 있다. 보통은 가, 나 군에는 수험생 대부분이 선호하는 대학교들이, 다 군에는 특별한 대학들이 많이 속해 있다. 유난히 ‘불수능’이었던 올해 수능을 치르고 난 후, 아들과 어디 대학을 지원할지 참 고민이었다. 수능을 보기 전만 해도 원래 모의고사 점수로 갈 수 있는 소위 명문대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이번 수능에서 원래 가려는 대학, 지망하는 학과에 가기에는 살짝 못 미치는 점수를 받다 보니 걱정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남편과 나는 아들이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으니, 이른바 ‘SKY’에 있는 아무 과라도 가서 그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SKY’보다는 다른 대학의 실속 있는 과로 가서 본인의 미래를 도모하기를 원했다.
4차 산업으로 온 지구상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명문대를 여전히 갈망하는 고집이 속물근성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는 우리나라 사회가 조금씩 학벌의 경계를 없애고 있다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SKY’라고 불리는 대학 간판의 명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소리를 높였다. 사회는 ‘SKY’ 출신의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명문대가 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의 곳’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런 허울 좋은 간판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길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미 하고 싶은 일, 학과가 정해져 있는데, 굳이 명문대 간판 때문에 원하지 않는 과에 지원해서 4년 동안 고생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이와의 이런 의견 충돌은 이미 정시 원서를 제출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부모 대부분은 아이가 직업을 잘 찾고 본인의 인생을 멋지게 꾸려가기를 바란다. 이런 길의 전제조건에는 항상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가고 전문직을 갖거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누구나 다 아는 길이 존재한다. 그래서 누구나 선망하는 학과, 대학의 경쟁률은 엄청나다. 항상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막상 입시의 최전선 앞에 서 있으니 나 역시도 그 ‘속물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이 미래에 누구보다도 좋은 대학에 가길 원했고, 번듯한 직장을 갖기를 바랐다.
그런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큰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까지 가졌던 마음이 혹시 나만의 보상 심리, 허영심은 아니었을지 걱정이 된다. 그동안 항상 기대를 충족시켜 준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는 아이의 엄마였기에, 당연히 명문대생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 말이다. 내가 명문대에 갈 것도 아닌데, 아이가 원하지 않는 길을 왜 그토록 원했던 것일까? 아이는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고, 고민 끝에 본인의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그 길을 만족하고 응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아이가 명문대에 가지 못한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아이를 위해 애써 온 모든 내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너무 겉만 쳐다보지 않았나 부끄러워진다. 잘 모르면서 주변의 사람이 ‘SKY’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우러러보았고, 갈 수 있는데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동안 높은 학벌만 추켜올리는 사회 분위기에 너무 젖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 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좁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 진로 교과서에 흔하게 되풀이되는 “네가 가슴이 뛰는 일을 해라”라는 말이 요즘 시대에는 꼭 필요한 마법의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살았던 과거보다는 실속 있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없는 사회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