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천생연분- 지정어;우주선/함께/단풍/바람>
어두운 표정을 한 A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길거리를 터벅터벅 걷고 있다. 170cm가 될까 말까 한 키에, 한쪽 귀를 가린 모자, 그리고 목이 짧고 두툼한 체형이다. 그는 상점 거울로 본인의 모습을 힐끗거렸다. ‘배가 조금 나왔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군.’ 그는 항상 이 정도면 다른 여성 인간을 만나기에 나쁘지 않은 체형이라고 생각했다. 이래 봬도 A가 살던 고향에서는 인간말로 ‘킹카’라고 불렀다. 모든 여성 종이 그를 흠모하며 세 밤, 두 밤마다 쉴 새 없이 시그널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그 여성 종들을 만나지 않았다.
A가 고향에서 떠나온 지 20년째다. 지구인들이 알지 못하는 머나먼 은하수 너머의 행성 EKSVND 2003, 그는 이번에야말로 고향을 가기 위해 우주선을 찾는 중이다. A가 고향을 떠난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쉽게 볼 수 있는 고향의 여성 종들보다 신비로운 다른 행성의 여성 종들을 만나고 싶었다. 짝짓는 나이에 접어들자마자 그는 여러 행성 중 지구를 골랐다. A를 흠모하던 수많은 여성 종 중 한 명이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왜 지구인가요? 왜 여기에서 당신의 짝을 찾지 않죠?”
“단순해요. 우리 행성 EKSVND이 지구에 있더라고요.”
A는 수수께끼 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 여성은 말을 이해 못 해 커다란 눈망울만 끔벅거렸다. 그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우주선을 탔다. 여성의 머리에는 단풍 모양 커다란 머리핀이 반짝거렸다.
A가 원하는 여성의 조건은 하나였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이해하는 것뿐이었다. 고향의 여성 종들은 귀가 하나인 탓에 자기 말을 하고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A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유일하게 두 귀를 가진 기형아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커다란 모자 안으로 한쪽 귀를 누르고 다녔다. 그런 그가 두 귀를 가진 인간을 지구에서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시스템 명령어를 누르던 도중 EKSVND을 누르자 수많은 행성 중에서 지구 그림과 함께 ‘단풍’을 든 여성이 나왔다. 고향의 형태와 비슷한 모양, 지구에서는 그것을 단풍이라 불렀다. 그때부터였다. 새로운 여성형을 찾기 위한 행성을 지구로 고른 것은. 그는 그곳에 사는 두 귀를 가진 인간 여자라면 본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안타깝게도 지구에서도 A가 원하는 여성 종은 찾을 수 없었다. 우선 그들은 다른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고 A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고향의 여성 종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던 어눌하고 느릿한 A의 말씨 역시 항상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귀가 두 개 있어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구나.’ A는 지구에 와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20년째 짝을 찾아 헤매던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가는 우주선을 찾아 나섰다.
A는 드디어 고향의 주파수가 흘러나오는 어느 초라한 단풍나무 카페에 도달했다. 며칠 전부터 신경 쓰이던 곳이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그곳에 들어섰다. 유행이 지난 컨트리 음악이 쓸쓸하게 울리는 카페에 낡은 코트를 입은 한 여성만이 앉아 있었다. A는 고향으로 가는 우주선이 숨겨진 카페 구석에 도달했다. 이제 명령어만 입력하면 고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명령어를 누르려는 순간, 그 여성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원하는 짝을 찾았나요?”
A는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고향에서 만난 단풍 모양 머리핀의 그녀였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
그러자 그녀는 서글프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원하는 여성이 누구인지.”
그녀는 A가 매정하게 고향을 떠나는 날, 그 우주선에 숨어서 몰래 지구로 건너왔다고 했다. 그리고 20년간 A를 지켜보며 함께 고향을 갈 수 있기를 빌었다고 했다.
A는 할 말을 찾지 못해 멍하니 쳐다봤다.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때 당신이 한 말이 단풍 맞죠? 이제, 지구에서 할 만큼 했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건가요? 그러면...... 우리 함께 가도 될까요?”
A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A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순간 그녀의 단풍 모양 머리핀에 가려졌던 한쪽 귀 하나가 드러났다. 그녀도 A처럼 두 귀를 가진 종이 었다.(원고지 12.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