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Dec 01. 2023

일상의 습관이 빚어내는 글쓰기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온라인 단톡방으로만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 먹은 식단을 공유하는 모임, 하루 운동량을 기록하는 모임, 하루에 쓴 일기의 날짜만 공유하는 모임 등 손으로 헤아려 보며 꽤 많은 숫자다. 이 모든 모임이 오직 한 사람의 무료 봉사 진행으로 시작되니 참 놀라운 일이다.


 그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숭례문학당의 한 프로그램에서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시절, 우연히 그분이 진행하는 ‘매일 충전 30분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지만, 언젠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하나를 품고 살았다. 그분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오전에 아무 시간대, 단 30분만 글을 쓰며 마음을 충전하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마감 시간인 오전 10시가 되면 항상 까만 동그라미는 ‘성공’, 그리고 하얀 동그라미는 ‘실패’로 하루 글쓰기 달성 여부를 참가자들에게 알렸다.


 처음에는 하루에 단 30분 만을 투자해서 글을 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글이 잘 써지는 날에는 30분을 넘기기가 일쑤였고, 글이 정말 쓰기 싫거나 소재가 생각 안 나는 날에는 30분은커녕 단 5분을 쓰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면 이런저런 변명을 마음속으로 하며 하루 글쓰기를 포기한 적이 많았다. 그때까지 나에게 글쓰기는 완성된 작품이자, 완벽해야 하는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완성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을 제한시간 30분이 다 되었다고 후루룩 올리기가 싫었다. 꼭 정제되지 않은 초라한 속내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 같아 무척 부끄러웠다.


 이상하게도 글쓰기 완성도에 대한 그런 똥고집이 커질수록 점점 글쓰기는 나와 멀어졌다. 이렇게나 완벽한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데, 도리어 매일매일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한동안 하루 글쓰기 달성 판에 하얀 동그라미들이 점점 많아지자,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날이 늘어났다. ‘그래, 난 원래 어딘 가에 매여 있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성향이야.’, ‘글은 영감을 받아서 써야지, 무조건 쓰라고 하면 되겠어?’라며 내 게으름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었다. 훌륭한 작품에 대한 천재적인 영감도, 좋은 글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계속 쓰다 보면 어쩌다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한순간에 떠오른 놀라운 영감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써 내려가는 성실성이었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글쓰기라는 고독하고도 외로운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었다.


 글쓰기에서만큼은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기복이 있다. 어떨 때는 한없이 기쁨에 젖어 신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도 어떨 때는 세상 앞에 너무도 초라한 자신이 느껴져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다. 이런 변화무쌍한 마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찬란한 승리의 트로피도, 암울한 패배의 월계관도 혼자서 쓰고 벗어야 한다.


 그분은 글쓰기의 이론이나 일상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려준 적은 없다. 그저 글 쓰는 이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건강한 식단 방, 매일 운동방, 매일 일기방을 운영하며 일상 습관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건강한 식단과 운동으로 글 쓰는 체력을 키우고, 매일 일기 쓰는 습관으로 하루치의 마음을 정리하자는 취지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모든 것이 다 연결된 종합행위이다.


 11월 마지막 날, 그분은 일상의 습관 단톡방에 있는 참여자들에게 특별한 인사를 전했다.


 “특별한 것도 없는 평범한 내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 연약했던 시절을 버티는데, 매일매일 글을 쓰며 마음을 다독이는데 큰 버팀목이 되었다. 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는데, 거기에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의 답글은 큰 위로와 용기가 주었다. (중략) 내가 받은 이 좋은 기운을 더 많은 분과 나누고 싶기도 했고, 또 일상의 루틴들이 연약한 날 잡아준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위라클 무료 모임을 만들었다. (중략) 어떤 모임이든 그 모임의 진행자가 가장 최대의 수혜자란 말이 맞는다는 걸 느낀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 혼자만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글을 너무나 쓰고 싶은 열정이 강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져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 주변에는 여러 인연이 닿아서 계속 나를 ‘쓰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일상이 만드는 습관의 중요성을 알려준 그분, 매주 독려하며 글을 쓰는 우리 에세이 문우들, 그리고 매일 글을 읽고 섬세한 댓글과 공감을 달아주는 분들이 계속 글을 쓰게 만든다. 글쓰기, 혼자만의 고독이자 동시에 함께의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글쓰기 버튼 재생시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