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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8. 2023

말의 거스러미

 가끔 손톱 주위에 작은 거스러미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을 때가 있다. 이런 거스러미는 손이 건조하거나 보습이 필요할 때 생긴다. 심각하게 아프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다. 매끈한 손톱 주위로 삐죽 뻗어 나온 모양새 때문에 단숨에 잘라내거나 뽑아버리고 싶다. 비록 정리할 때 약간의 아픔을 감수하고 피가 나더라도 말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항상 촉촉하고 따뜻하고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사람들만 주변에 있지 않다. 이상하게 둘러보면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다. 그 사람과 잠시라도 대화하면 사소한 말들 때문에 신경이 콕콕 찔리고 꼭 분노의 스위치가 발동된다. 물론, 그가 의도하고 건넨 말 때문인지 아니면 예민하게 반응한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사람과 한 마디라도 나눈 날은 집에 돌아와 꼭 혼자서 씩씩거리며 대화를 되새긴다는 점이다.


 말의 거스러미는 불편하다. 그 사람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건네는 사소한 말, 사소한 행동들이 마음을 메마르게 만들고 여기저기 거스러미를 잔뜩 심어놓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를 뽑거나 잘라 버릴 수도 없다. 한 사람이 건네는 말의 거스러미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그와의 관계를 정리할 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굳은 결단이 없다면 흐지부지 마음을 묻어둘 수밖에 없다. 앞으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말이다.


 왜 때때로 사람의 말이 기분이 나쁘게 느껴질까? 그럴 경우는 보통 세 가지다. 아주 악의를 숨기고 말을 건네는 경우, 다른 사람의 상황을 무시하고 쉽게 말을 꺼내는 경우, 그리고 습관처럼 무신경하게 이야기하는 경우이다.


솔직히 첫 번째의 경우는 인간관계 유지에 있어서 재고의 여지가 없다. 악의를 마음속에 가득 품고 말을 속삭이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냥 바로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 편하게 일하고 즐겁게 살아도 모자랄 세상, 굳이 그런 사람과 마음고생, 몸 고생을 하며 같이 일을 하며 마음고생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경우는 좀 애매하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무시하고 쉽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라면,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힘들다. 이런 사람은 보통 자신감이 넘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유형에 사회생활을 매끄럽게 잘한다. 자기애와 본인 관리가 너무도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일만이 중요하고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회생활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유형일 수 있다.


 세 번째 경우는 악의는 없지만,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이다. 보통 악의가 없을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무신경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왜 당신의 말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사람과 계속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를 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그 사람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보통 고등학교 때까지 만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나이가 들어 사람을 만나면 여러 가지 이익을 먼저 따져 진정한 우정을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그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사회에서 만나도 순수하게 마음의 허물을 드러내며 마음 깊은 속정을 나눌 수 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낮추어 보는 마음은 여러 말의 거스러미를 심는다. 또다시 그런 거스러미는 상대방의 마음에 불편한 감정을 만든다. 특히 착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거스러미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고민한다. 그냥 피가 나더라도 단숨에 거스러미를 정리할까? 아니면 좀 더 두고 볼까? 마음에 맞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면 좋으련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꼭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불편하고 답답해도 만남을 유지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단호하게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싶지 않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최선이다. 때때로 이런저런 투덜거림으로 쓰린 속을 달래며 그 사람을 무시할 뿐이다. 그게 말의 거스러미로부터 불편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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