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3년 올해를 보내며

by 하늘진주

눈을 한번 깜박하고 보니 12월의 허리를 지나고 있다. 얼마 전에 큰애의 수능 원서를 썼고, 며칠 전에 수능을 치렀던 것 같은데, 재깍재깍 지나가는 시계는 어느새 12월의 끝자락을 향한다. 올해는 고3이었던 큰 애와 함께 울며 웃으며 지냈던 시간이었다. 고3 아이 못지않게 고3 엄마도 같이 아파하며 힘들었던 일 년이었다. 그런 모든 시간이 아쉬운 한숨을 내뿜은 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12월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바쁜 달이다. 올해 1월부터 차근차근 쌓여온 시간의 흔적들은 12월이 되면 더 무겁게 덮인다. 꼭 연말의 끝자락에 물어보는 질문들이 마음을 더 묵직하게 누른다.

‘올해를 잘 보냈나?’,

‘이만하면 잘 살았나?’

주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이 자꾸만 나를 짓누른다.


올해는 고3 큰애와 관련된 일을 빼면 특별히 생각나는 일이 없다. 생전 처음 고3 엄마라는 타이틀을 단 채 아등바등하며 지냈던 시간이었다. 자꾸만 바뀌는 입시정책들, 슬럼프에 빠져 힘들어했던 큰 애,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공부 방법을 찾지 못하는 둘째…. 세상은 ‘고3 엄마’라고 특혜를 주지 않았다. ‘고3 엄마’ 임을 내세운 채 그동안 좋아하고 즐겼던 모든 일들을 멀리하는 사이, 어느 순간 외딴섬에 갇힌 방랑자가 되어 버렸다. 힘겨워도 같이 어울려야 하는 일이 있었고 지속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마음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그동안 몸담았던 모임들을 멀리하는 사이, 그들도 나를 소외시켰다.


1년 동안의 성과를 축하하며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한껏 초라해진 나를 느낀다. 손뼉을 치고 웃음을 보내는 사이 마음은 점점 서늘해진다. 어둡고 조용한 12월의 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금 끄집어낸다.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 지냈던 소망들, 어영부영 보냈던 일들, 꼭 연말의 끝자락이 되면 또다시 유령처럼 슬며시 튀어나와 묻는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니?’

좀처럼 결정하지 못한 채 또다시 12월을 보낸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불가능한 꿈들을 덮겠지. 그러면서 나라는 인간은 조금씩 포기를 배워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저녁 설거짓거리를 보며 떠오른 단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