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Dec 15. 2023

“나는 내 몫만큼만 욕심내” <자기 앞의 생> (서평)


 자신 앞에 놓인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생, 죽음,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게 되는 시기는 항상 뭔가 고난과 큰 결정이 필요한 때이다. 대부분 사춘기 시절을 맞이하면 온몸을 감싸는 엄청난 신경질 호르몬과 함께 자아에 대해 자문하며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들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들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자신을 하루하루 느끼면서 말이다. 이 신경질 호르몬 시기야 말로 인간이 가진 진리와 세상에 대한 비밀을 가장 많이 파 헤치는 시간이다. 특히 자기의 삶이 온갖 비밀과 거짓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 모하메드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해지고 싶은 소년이다. 의 출생증명서는 비밀로 가득 차 있다. 출생증명서의 나이는 분명 10살로 명시되어 있지만, 훨씬 성숙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모모는 학교 진학을 허가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보통 14세의 사춘기 소년들과 다른 행동과 애정으로 로자 아줌마와 노인들, 그리고 모든 고통받은 사람들을 대한다. 모하메드는 이기적으로 행복해지고 싶어 했지만, 끝내 그를 돌봐준 로자 아줌마를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길을 함께 지켜봐 준다.


 <자기 앞의 생>은 14살 아랍인 고아 모모와 그를 돌보던 유대인 로자 아주머니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이다. 이 책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혼란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온 후, 몸을 파는 일을 전전해 온 로자 아주머니는 나이가 든 후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보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모모는 그 창녀들의 아이 중 한 명인데, 로자 아주머니는 이 모모에게 남다른 관심이 있다. 처음에는 모모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엄마를 갈구하며 똥을 집 안 구석구석에 싸 놓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점점 나이 들어 치매 끼를 보이는 로자 아주머니를 돌보며 이해하려 애쓴다. 어쩌면 이들의 관계는 순수한 애정이 바탕이 된 관계보다는 절실한 필요에 의한 집착에 가까운 우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모는 똥을 눈 뒤에도 뒤처리를 하지 못하는 로자 아주머니를 ‘아름답게’ 보려 노력한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똥’에 대한 표현은 서로를 향하는  애정의 척도다.


 <자기 앞의 생> 속에서 표현된 서로의 종교를 넘어선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존엄사’에 대한 질문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과 질문들을 요구하는 책이다. 모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장 견딜 수 없는 일은 안락사를 금지시켜 로자 아줌마처럼 온갖 세상 고생 다 하며 살아온 노인네를 더 고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p242)’


 ‘안락사’는 도덕적인 이유에서건, 종교적인 이유에서건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주제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내 손으로 결정한다는 것,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내 손으로 결정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요즘 현대 의학 기술의 발달로 ‘Well-dying(잘 죽기)’가 요즘 추세라고 하지만, 종교인이 아닌 이상, 한번 죽으면 영원한 이별처럼 느껴진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안락사'를 선택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다.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라고 하는 데,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는 시간의 속도는 왜 이렇게 빠르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영원을 운반하기에 바쁠 것이 없다는 것은 조물주만의 생각이 아닐는지.


  인생, 사랑에 대해 수많은 예술가가 노래하고 철학자들이 연구하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것이 이 주제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랑보다는 인생에 더 중점을 두게 되는 것은 가족보다는 나 먼저 챙기고 싶은 이기심 때문인지 자아 성찰을 위한 순순한 탐구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자기 앞의 생>,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


 몇 년 전에 방송된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 이런 대가 나온다. “나는 내 몫만큼만 욕심내”라는 품위 있는 주인공 우아진의 말이다. 실제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해피엔딩을 맞이한 그녀이다. 우아진은 새로 들어온 시어머니가 살해되고 남편의 바람에, 부잣집 시댁이 풍비박산되는 환경 속에서 고고히 중심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 분수에 맞게, 자기 몫만큼만 욕심내는 것이 그녀에게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자기 앞의 생>의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결말이 불행인지, 행복인지 쉽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빛에 따라 달리 보이는 다이아몬드처럼,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자기  앞의 생'앞에서 어떤 삶을 꿈꾸는 가? 적어도 나는 인생에서 주어진 시간에서 '내 몫만큼 꿈꾸며' 행복한 죽음을 맞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실의 그림자’, 거짓말 (미안, 고래뱃속, 20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