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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25. 2023

지나간 추억들을 슬프지 않게 기억하는 방법’,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

‘지나간 추억들을 슬프지 않게 기억하는 방법’,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나이가 들수록 슬픔은 너무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감정이다. 인간이 이미 정해진 수명만큼만 살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필연적이다.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그 슬픈 작별만은 막을 수가 없다. 누구나 언제 있을지 모를 죽음의 순간을 두렵고 서글픈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별의 대부분 기억은 슬픔의 아픔과 함께한다. 지나간 추억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아름답게 기억하고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히라타 겐야의 그림책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기토 구니오 그림, 바다 어린이, 2010, 4.15)은 추억의 소중함에 대해 알려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책은 부드럽고 따뜻한 노란 색감의 책 표지가 무척 인상적이다. 주인공 할아버지는 연둣빛 바다 위에 가파른 계단이 달린 하얀 집에 살고 있다. 그는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는 마을에 살고 있어 매번 한층 한층, 집을 쌓아 올려야 했다. 물속에 살던 집이 잠기면 그 위에 새집을 짓고, 또 잠기면 새집을 짓고….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는 ‘나무 상자를 몇 개씩이나 쌓아 올린 집’에 살고 있었다. 한때 할아버지도 역시 할머니와 자식들과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홀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외로움에 익숙해진 노인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또다시 바닷물이 마루까지 차오르자 또 새집을 지을 생각을 한다. 그러다 집을 짓던 톱과 망치가 바닷속 아래로 빠지고 만다. 그는 그 연장들을 찾아 바닷속으로 깊이 잠수한다. 그렇게 점점 집 아래로 내려가며 할아버지는 기억 저 너머로 감춰뒀던 소중한 추억들과 만난다. 3년 전 할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의 집, 즐거운 마을 축제가 있었던 집, 맏딸을 시집보냈던 집, 키우던 새끼 고양이를 잃어버렸던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아기가 태어났던 집……. 주변 마을 사람들이 떠나도 못 떠나고 지켜야만 했던 기억들이다. 할아버지가 아래로 헤엄치며 만났던 집들 모든 곳에 지나간 추억들이 남아 있었다.

 인간이 아름다운 생명력의 귀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때이다. 그 이전까지는 생명과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혹 지루한 시간의 굴레 속에서 차곡차곡 사그라드는 생명력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정말 운이 좋은 셈이다. 그렇다면 본인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그저 슬픈 마음으로 기다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사람은 어차피 죽는다. 누구나 팔딱거리며 요동치는 본인의 생명이 어느 순간에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때로는 휘몰아치는 인생의 변화에 허덕이느라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지만, 이별의 순간은 반드시 다가온다. 그런 상황을 어떤 마음으로 맞서야 할까?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앞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과 이별의 시간은 슬프고 두렵다. 그런 서글픈 아픔으로 인해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에 나오는 마을 사람은 정든 추억과 기억에서 멀리 떠나는 ‘회피’를 선택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추억을 조금씩 덮쳐오는 바닷물 속에서 새로운 집 짓기는 굳건한 의지 없이 불가능하다.


 옛날에 이 마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집 짓기를 그만두고 이사를 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연속된 이별의 기억 위에 새로운 집을 쌓고 있다. 덮치는 바닷물의 슬픔이 그를 감쌀지라도 말이다. 할아버지는 매번 바닷물이 집안의 마루까지 차오를 때마다 “이런저런…. 또 새집을 지어야겠구먼.”이라고 말하며 톱과 망치를 든다. 그는 사랑하는 할머니,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기보다는 그 위에 새로운 집을 지어 견디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할아버지가 한 땀 한 땀 쌓아온 집의 층수가 6층 이상이다. 그는 슬픔을 잊기 위해 기억의 순간을 외면하기보다는 현재의 새로움으로 다시 시작하기를 선택했다.


 그림책 <할아버지의 바닷가 집>을 리뷰한 네이버 블로거이자 작가인 ‘꽃님애미’는 평론가 신형철의 책, <인생의 역사>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간을 사는 인간’이 그 많은 시간을 ‘충분히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이다. 지나간 시간에 ‘분노’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손에 있는 현재를 후회 없이 살고,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근원적인 감정은 어떤 분함에 가까웠다.

 일생이란 결국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왜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많은 날은 가뭇없고 속절없는가.

왜 우리는 그 나날들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하는가.

시간을 사는 인간의 이런 종적 결합이 원통해서 눈물이 났던 것일까.”

(p.234)<인생의 역사> (신형철, 난다, 2022)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면 점점 인생의 종점이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순간을 맞이할까? 어쩔 수 없는 삶의 유한함을 탓하며 슬픔에 잠길지, 아니면 평론가 신형철처럼 ‘그 나날들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한’ 나를 탓하며 눈물을 흘릴지, 아니면, 네이버 블로거 ‘꽃님에미’처럼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할지’는 선택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의 할아버지처럼 자포자기하지 않고 끝까지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야겠다. 지나간 삶의 시간을 원망하지 않고, 떠나간 추억들을 슬프게 기억하지 않고, 항상 행복하기를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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