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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03. 2024

때때로 만족감은 현실 세계를 둘러싼 포장지이다.

 현재 상황에 대한 만족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생활에 대해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 ’하다고 여기며 소소한 행복을 수집하는 것만큼 더 만족스러운 삶이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욕망이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다. 채우며 채울수록,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더 많은 것들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숙명이다. 원하지 않아도 클릭 한 번만으로 보이는 다른 이들의 화려한 삶의 모습과 유명세는 자꾸만 마음을 위축시킨다. 만족감은 실은 주어진 것만 추구하며 다른 것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참아야지만 얻을 수 있는 감정이다. 때때로 만족감은 현실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희미한 포장지와 같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민음사, 2022)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사회의 통념들을 가뿐하게 무시하는 소설이다. 천재 이야기꾼인 작가는 모든 이가 갈망하는 물질적인 욕망과 예술을 향한 주인공 찰스의 자유로운 열정을 교묘하게 대립시키며 세속적인 문명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소설을 썼다. 개인의 만족감과 보편적인 의무는 어느 만큼의 거리를 가져야 할까? 이미 현실사회의 통념에 갇힌 독자들은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본인의 꿈을 추구하기 위해 했던 모든 행동들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십 대 가장인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더 늦출 수가 없"(p.67)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p.69)라는 말을 남기며 가족을 버린다. 이미 꿈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기만족에 빠진 찰스에게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주변인들의 만류는 통하지 않는다. 무작정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는 그의 신념만이 돌발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유일한 변명거리다.


 꿈을 향해 앞뒤 바라보지 않고 무섭게 돌진하는 찰스의 모습은 존경심과 동시에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열정이 만족할 만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그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무모한 행적과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모니카 페트의 <바다로 간 화가>(모니카 페트 글,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풀빛> 역시 꿈에 대한 또 다른 열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그녀는 이미 <행복한 청소부>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인상 깊은 눈도장을 남긴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작가는 대도시에 사는 가난한 화가가 본 적이 없는 바다를 갈망하는 모습을 통해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추구했던 광적인 예술 영혼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로 간 화가>에 나오는 주인공은 오랫동안 큰 도시의 여러 풍경을 그린 화가이다. 그는 직장인이었던 찰스 스트릭랜드보다 빨리 그림을 직업으로 선택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주변 곳곳을 다니며 ‘도시의 큰길, 자동차, 버스, 역과 기차’ 등등을 그리며 생계를 이어간다. 복사 빛 뺨이 쭈그러들고 도시의 모든 풍경을 다 그렸을 무렵, 문득 그는 생각한다. ‘이제 무엇을 그릴까?’ 화가가 떠올린 풍경은 바다였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끝없이 넓고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다는 바다, 가난한 화가인 그가 가기에는 너무도 먼 곳이었다. 그는 “너무나 바다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조금씩 돈을 모아 무작정 오래된 꿈을 향해 떠난다.


 화가가 도착한 바다는 “마음속의 모든 말, 모든 생각”이 조용해지는 곳이다. “바닷물은 하늘까지 맞닿았”고, 오로지 “새로운 멜로디”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는 바닷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그리지만, 화가의 그림은 생각보다 인정받지 못한다. 몇몇 사람들만이 그의 그림을 사 주지만, 그걸로 생계를 이어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화가는 ‘돈이 다 떨어져’ 다시 쓸쓸한 패잔병처럼 도시로 돌아온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바다에서의 기억을 담은 그림 한 장뿐이다. 화가는 그 그림을 침대 위에 걸어두고서 누구에게도 팔지 않는다. 그저 그는 “난 슬퍼하지 않아. 바다를 보았고, 또 그렸으니까”라고 말할 뿐이다. 어느 날 화가는 그 그림에서 놀라운 광경을 발견한다. 그의 꿈들이 실현될 수 있는 그림 속의 세상이다.


 작가는 화가의 입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꿈과 만나는 행운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림 속 세상에서 영원히 행복한 화가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꿈은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만족할 때까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인이 가진 꿈을 만족시키기 위해 현재의 삶을 훌훌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광기도, 화가의 열정도 마냥 편하게 볼 수 없는 이유는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욕망 속에서 꿈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것이 돈으로 그 가치를 매기다 보니 꿈 역시 세속적인 평가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분명 그들이 처음에 가진 꿈은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욕망, ‘바다를 담고 싶다’라는 순수한 마음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돈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는 돈 잘 버는 증권거래사로 일하며 취미로 그림을 그려야 했고, 화가는 바다를 그린 그림으로 유명세를 누리며 큰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이 가진 꿈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속물근성 탓에 세속적인 욕망과 동떨어져 끝없이 순수한 꿈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이 영 불편하기만 하다.


 솔직히 찰스 스트릭랜드와 화가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꿈을 향해 마냥 내달릴 용기가 없다. 그들처럼 위대한 명성을 얻을 재능도, 그렇다고 현실의 삶에 머무른다 한들 지금의 일로 큰돈을 벌 자신도 없다. 그저 주변의 반짝이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치며 살 뿐이다. 그래서 애써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려고 한다. ‘현재의 모습에 만족한다’라는 얄팍한 최면으로 살지 않고 마냥 꿈만으로 내달린다면 어떻게 이 삶의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때때로 자기만족이라는 감정은 꿈을 향해 내달리게 하는 불쏘시개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삶을 버티고 있는 불투명한 포장지이다. 꿈을 가리는 포장지를 급하게 벗기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도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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