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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13. 2023

진실의 그림자’, 거짓말 (미안, 고래뱃속, 2021)

<출처: 구글 이미지>


 심리학자 조셉 자스트로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사용한 토끼-오리 그림은 착시현상을 보여주는 유명한 그림이다. 원래 이 그림은 독일의 유머 잡지 <날아다니는 나뭇잎(Fliegende Blätter, 1892년 10월 23일 호)에 실렸는데, “어떤 동물과 가장 닮았나?”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 그림을 활용하여 두 가지로 사물을 보는 방법을 설명했다. 왼쪽을 중심으로 보면 오리 같고, 오른쪽을 중심으로 보면 토끼 같다. 그림은 하나의 동물을 그렸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른 동물이 보인다. 진실 또한 이런 착시현상이 아닐까? 어떤 방향에서, 어떤 관점에서 진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진실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미안 작가의 그림책 <거짓말>(고래뱃속, 2021)로 이런 진실의 양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쓴 미안 작가는 사람들의 불편한 감정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글쟁이다. 그녀는 본인을 ‘일상으로부터 비롯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짓고 있’고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나눈 것이 꿈’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책들을 읽다 보면 ‘소소한 이야기’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더 유의 깊게 살펴야 한다. 미안 작가의 그림책은 ‘소소’하지만, 생각거리가 무척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책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면 작가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이 책은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는 사회 속에 널리 퍼진 편견과 차별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명확한 결말로 끝맺지 않아 독자들이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생각할 거리를 계속 안겨준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안 작가는 ‘불편함을 그리는 작가’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그림책 <거짓말>은 모두가 맞다고 하는 진실에 대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작품은 책의 겉표지부터 의미심장하다. 책의 앞면과 뒷면을 모두 펼치면 토끼와 까마귀의 그림이 가장 눈에 띈다.

 책의 앞면은 초록빛 풀밭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하얀 토끼의 그림이다. 귀엽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순수한 토끼이다. 책의 뒷면은 어둡고 깊은 물속에 잠겨 있는 까마귀의 그림이다. 매서운 눈으로 무언가를 쳐다보는 까만 까마귀는 어쩐지 불길하며 음흉해 보인다. 토끼와 까마귀의 두 그림은 보면 자연스레 독일의 유머 잡지를 장식했던 착시현상 그림이 연상된다. 한쪽으로 보면, 토끼, 다른 한쪽으로 보면 오리였던 그림말이다. 진실은 보이는 눈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이다.


  <거짓말>은 주인공 까마귀의 “나는 규리, 태경이와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고 있었다”라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토끼인 태경이 다른 친구인 규리의 발을 걸어 보라고 한다. 주인공은 당연히 하기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갑자기 규리는 넘어져 팔이 부러지고 태경은 주인공이 한 짓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아무리 그가 아니라고 해명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엄마도, 아빠도, 학교 선생님도, 친구들도…. 그 속에서 주인공은 점점 고립되고 ‘나쁜 아이’로 낙인찍힌다. 사람들이 보내는 날카로운 비난의 시선 속에서 까마귀는 억울해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주인공이 말하는 진실보다는 태경이 말하는 거짓말이 더 힘이 세다. 결국 주인공은 모두가 진실이라고 믿는 거짓말 속에서 어떤 결심을 한다.


 출판사는 이 책을 ‘힘센 거짓말의 횡포 속에 사그라든 세상의 연약한 진실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모두가 믿는 사실이 정말 진실일까?’라는 질문을 덧붙인다. 미안 작가는 약한 진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주인공이 하는 뜻밖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본 독자들은 아주 찜찜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이후 주인공과 태경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까? 그건 오로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 채 말이다. 까마귀 역시 본인의 행동이 억울한 것은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그런 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책의 배경은 여름이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답답한 진실처럼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계절은 겨울이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차가운 현실, 주인공은 홀로 쓸쓸히 거짓말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미안 작가는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쓴 동기에 대해 “진실은 하나뿐인데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거짓말은 다양한 모습으로 빠르게 변형되어 끝없이 확산”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말의 파급력 때문에 “진실이 더욱 묻혀 버리는 악몽 같은 상황”을 접한 사람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세상에는 진실을 가리는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들이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각각 토끼와 까마귀로 설정한 이유도 정형화된 이미지를 다시 보기를 바라서라고 전했다.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토끼 태경, 어둡고 불길한 이미지의 주인공 까마귀이다. 이 사건은 이미 진실이 밝혀지기 전부터 범인은 정해져 있었다. 주변인들이 지닌 선입견 때문에 주인공은 처음부터 ‘가해자’ 일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은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마음을 참 불편하게 만든다. 만약 이 책이 주인공 까마귀의 관점으로 서술되지 않고 3인칭 관찰자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독자들은 어떤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봤을까? 아마도 이 책에 나온 주변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얗고 귀여운 토끼와 불길하고 어두침침한 까마귀가 범인으로 지목된 상황이다. <거짓말>은 진실 너머에 있는 그림자에 대해 살펴보게 만든다. ‘모두가 믿는 것은 모두가 진실일까?’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판결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과 시선으로 신중하게 진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거짓말>은 진실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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