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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3. 202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가?> 북리뷰

하늘 진주의 독서 유람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가?/장 지글러/갈라파고스> 북리뷰


 마블 어벤저스 영화 ‘인피니티 워’에서 악당 타노스가 여섯 개의 스톤을 이용해서 온 인류의 절반을 죽이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다. 그는 “우주는 유한해. 자원도 그렇지. 이대로 가면 아무도 못 살아남아.”라고 말하며 생명체의 절반이 죽어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온 우주를 돌아다니며 생명체의 절반을 죽였고 단 한 번의 핑거스냅으로 인류의 절반을 죽이기 위해 여섯 개의 스톤을 찾아 헤맸다. 그런 타노스의 철학은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의 ‘자연 도태설’과 연결된다. 선진국들은 이 이론을 지금까지도 굳게 믿으며 국제 기아를 대할 때 외면하는 이유로 삼기도 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가?>의 장 지글러는 이런 선진국들의 믿음이 세계 식량의 생산이 소비보다 훨씬 많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절반의 사람들이 굶주리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꼽았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 가?>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 특별조사관을 지낸 기아 문제 전문가 장 지글러가 세계의 기아 현실과 원인에 대해 아들 카림과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이 저서는 1999년 초판 된 이후 대한민국에서 스테디셀러로 팔리고 있고,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의 필독서 목록에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특히 예전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며 더 주목받기도 했다.


 장 지글러가 이 도서에서 가장 크게 소리 높여 말하는 부분은 한 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120억 명을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있지만 왜 세계의 절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1999년 당시의 자료라 2021년 수치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굶주리는 현실은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그 국제 기아의 원인으로 책에서는 경제적 기아, 구조적 기아, 테러, 과거 식민지 정책, 환경 변화 등등 여러 가지 현실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3가지 원인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트 워’의 타노스가 신봉했던 18세기 영국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의 ‘자연 도태설’이다. 저자는 토마스 맬서스의 이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2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 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 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 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p55-56)”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p56-57)”


 저자는 선진국 사람들이 이 이론을 믿으며 국제 기아 앞에서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농산물 생산이 제한되는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장 지글러는 현실에서 부유한 나라의 소들은 배불리 먹고 다른 쪽에서는 많은 사람은 영양실조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p86)’라고 말한다. 이어 부유한 나라들은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며 자국의 농민을 보호’(p94) 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카림, 너 혹시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거나 해서 영양 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거꾸로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영양실조로 굶어 죽고 있어. (p86)”


 “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을 하거나 법률이나 그 밖의 조치를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고 있단다. 생산자들에게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것이 그 이유지. (p92)


 유럽 연합은 자국의 농민들과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농산물의 생산을 제한하면서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 이런 바 모든 가격의 원리를 자율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이다. 저자는 이 시장원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 사회에 무엇이 진정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고 그저 경제 합리성’(p179)만 주장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는 기아가 국가 테러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저자는 북한 정부와 기니 공화국의 예를 들며 독재 정치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수용소로 보내 굶주림에 방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의 인권이나 존엄성보다는 독재 정권의 체제 유지가 더 우선시된 경우이다.


 ”평양의 권력자들은 수많은 사람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구나. (중략) 북한 정권은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그곳으로 추방해 왔단다. 당사자만 가두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일족 전체를 추방하고 있지. (p118-119)“


 “세쿠 투레는 이런 곳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반대자로 찍힌 사람들을 가두었고, 갇힌 사람들은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단다. (p120-121)”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독재 국가에 식량을 원조하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큰 논란거리다. 누구나 독재 국가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식량을 지원하는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선다. 이념과 인권은 양면의 칼날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고 있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 가?>는 1999년 초판 이후 20년이 넘었지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소년이 앞다투어 읽고 있다. 독서의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지구 반대편의 현실을 안다면 저자의 목표는 이미 성공했다. 우리는 이미 마블 영화의 ‘엔드 게임’에서 ‘자연 도태설’의 꿈꾸었던 타노스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잘 알고 있다. 자기 철학을 실천한 타노스도, 남겨진 절반의 인류 역시 모두 행복하지 않았다. 지구 생명체의 삶은 산술적인 수치만 가지고 판단하기에 너무 복잡하다. 미래의 지도자인 청소년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일상에서 지구를 걱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삶을 꿈꾸는 현실의 지도자인 성인들에게도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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