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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Feb 09. 2024

박경리의 소설, <토지> 완독을 목표로 삼다.

강원도 원주 <박경리 문학의 집>을 둘러보며

 강원도 강릉으로 향하는 올해 겨울 가족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경기 수원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중간지점에는 강원도 원주가 있다. 솔직히 이곳은 작년 여름휴가 때 맛봤던 손말이 고기의 맛이 그리워 다시 찾았다. 이 도시에는 예능 <신서유기>에 나왔던 손말이 고깃집이 있다. 음식을 주문하면 맛깔스러운 밑반찬과 함께 수줍은 채소를 돌돌 말은 붉은 한우 한 접시가 나온다. 기름진 무쇠팬에 잘 구워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자연스레 달달한 후식이 생각났다. 급하게 검색 창에 강원도 원주 카페를 입력하니 영어 카페 이름들이 즐비한 가운데 특이한 한글 카페가 눈에 띄었다. '카페 서희'. 이름 속에서 굳건한 강단을 지닌 여성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홀린 듯 이 카페로 향했다.

 강원도 원주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 카페는 흑백의 조화가 어우러진 수묵화 이미지가 떠오르는 곳이었다. 마침 흐린 회색 하늘에 날리는 하얀 눈들이 그런 착시를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특색 있는 카페 이름에 끌려왔다가 이 이름의 출처가 소설 <토지> 여주인공 이름임을 뒤늦게 알았다. 카페 주변은 소설가 박경리가 생전에 살았던 집, 작품들과 물품들이 보관된 전시관, 널따란 마당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은 급변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토지>의 마지막 편이 완성된 '박경리의 문학의 집'이었다.


<토지>가 차지하는 문학계의 무거운 이름값과 달리, 소설가의 작업실은 고즈넉하고 평범한 원주 시내 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년 전 춘천 문학기행으로 방문한 '김유정 문학촌'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작은 규모의 곳이었다. 단체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단아하고 고요한 그곳의 분위기가 딱 생전의 작가의 모습 같았다. 대하소설 <토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문학계 거장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모양새의 일반 가정집이었다. 그런 탓일까? 유독 이곳을 다녀온 방문객들은 '외할머니 집을 방문한 것 같다'라는 표현을 많이 했다. 유명인의 집을 방문한다는 위축감보다는 생전의 작가의 소탈한 성품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박경리 작가는 2층 양옥집 1층에 자리 잡은 한 방에서 <토지> 마지막 편을 완간했다. 컴퓨터 타자로 글을 쓰기보다는 몸에 지닌 유일한 사치품인 몽블랑 만년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에 눌러썼다. 글을 쓰다 생각이 막히면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나갔다. 그 당시의 감정을 '호미를 만년필처럼 땅을 텅 빈 원고지 삼아 생각을 정리했다'라고 표현했다. 머릿속으로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소설로 쓰면서 항상 땅과 함께 생각을 골랐다. 묵묵히 작품을 써 내려간 작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토록 긴 세월을 한 작품에 쏟아 넣을 수 있는 작가의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몇십 년 동안 오로지 <토지>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흘렀던 작가의 땀과 노력들을 생각하면 아직 그 작품을 끝까지 읽지 못한 내 게으름이 부끄럽다.


 올해 2024년 독서목표는  <토지> 완독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 대하소설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카페 서희>를 방문하고 싶다. 어두컴컴하면서 몽환적인 카페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 서늘하고 달달했던 음료, 토지 한 잔 시킬 것이다. 황톳빛이 가득한 군고구마 맛을 음미하며 나의 <토지> 완독을 축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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