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안정되게, 그리고 편안하게 먹고사는’ 일은 대부분 현대인이 원하는 꿈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본업 이외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면 이 책,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노지양, 2018, 북라이프)를 유의해서 봐야 할 듯싶다. 제목부터 ‘먹고사는’ 직업 이외에 마음속에 숨겨둔 다른 꿈을 건드리는 이 책은 14년 차 번역가 노지양의 첫 에세이집이다.
노지양은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유열의 음악앨범>, <황정민의 FM 대행진>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우연히 들었던 문화센터 강좌를 계기로 번역가가 되었다. 그녀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를 비롯해 <하버드 마지막 강의> 등 다양한 분야의 책 8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14년 차 중견 번역가인 작가가 다른 작가의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그동안 숨겨두었던 글쓰기 욕망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소설 <머리로만 책을 쓴 사람>의 한 남자의 모습에서 찾고 있다. 이 인물은 젊은 시절 소설을 썼다가 친구들에게 혹평받고 예순두 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14편의 소설을 종이가 아니라 오직 머리로만 쓴 인물이다. 그녀는 이 인물을 보며 본인 역시 ‘머리로만 에세이를 쓴 여자’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동안 수십 권의 책을 번역했지만, 본인의 “글을 쓰고” (p.9)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써야만 이 들끓는 마음이 진정될 것”(p.9)이고 “먹고사는”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열망 탓인지, 이 책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번역가로서 힘들었던 후일담, 미래를 꿈꾸는 마음들이 솔직 담백하게 소개되어 있다.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는 크게 4부분, ‘1. 일하는 마음’, ‘2. 되고 싶은 마음’, ‘3. 불행하지만은 않은 마음’, ‘4. 여자로 살아가는 마음’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챕터들은 영어표현과 제목들이 붙여져 있다. 이 영어 단어들은 주로 영화, 드라마의 한 대목에서 따온 것들인데 영어를 다루는 번역가답게 영어표현과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중에서 ‘본인의 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볼만한 챕터는 ‘경력은 나쁜 남자친구’ (career) 부분이다. 작가는 미국 코미디언 에이미 폴러의 <예스 플리즈>의 한 대목, ‘경력이란 나쁜 남자친구 같다’라는 표현을 소개한다.
“꿈이든 목표든 나쁜 남자친구를 대하듯이 해야 한다. 여러분이 원하는 일은 여러분을 신경 쓰지 않는다. 다시 연락하거나 부모님에게 소개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있든 말든 다른 사람들과 대놓고 놀아날 것이고 (중략) 원하는 일을 너무 자주 불러대면 여러분을 뻥 차버릴 것이다. (중략) 여러분이 원하는 일은 절대로 여러분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p.24)”
작가는 이 대목을 언급하며 번역하는 일의 고충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한다. 열심히 번역했지만 독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일이 있었고, 번역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면서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일까,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p.28)라는 고민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나쁜 페미니스트> 번역을 받아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람의 삶은 ‘예측불허’하기에 더 알 수 없다. 확고하게 믿었던 일들이 더 큰 실망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전화위복’이 된다. 작가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가진 ‘간절함’이, ‘포기 안 된’ 마음이 바로 본인만의 ‘재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여전히 재능을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혹평과 독자들의 무심함에 상처를 받지만,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꿈이라면 계속 지속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래서 “들어오는 책은 마다하지 않고 번역했고(...) 아무리 못난 글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p.97)라고 전했다. 14년 동안 80여 권을 번역하고 첫 에세이집을 낼 수 있는 작가의 저력에는 그런 ‘간절함’이 숨어있었다.
이 에세이는 번역가 노지양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인생의 기록이다. 작가의 개인사나 실패담을 깊게 알고 싶지 않은 독자들은 이런 글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책을 읽으며 낯선 영어표현과 개인적인 서사가 어우러져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작가의 메시지가 답답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바쁜 일상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는 강렬하다.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 매번 간절하게 본인의 인생을 그리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