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을 그린 그림책, 크랙
“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랐어.”
인디밴드 ‘볼 빨간 사춘기’의 <나의 사춘기에게>의 가사 첫대목이다. 피아노의 맑은 음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여성 보컬의 차분한 음색으로 혼자만의 공간에서 외롭고 슬펐던 경험을 담아내고 있다. 이 곡에 담긴 주인공의 사춘기는 ‘온 세상이 너무나 캄캄’해 보여서 매일 울고 싶은 날이 많은 시간이다. 힘겹고 두꺼운 방황의 알을 깨고서야 비로소 본인을 찾은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어른이 되기 전 맞이하는 인생의 봄은 아프다. 거친 목탄화 표지의 그림책 <크랙>(조미자 글, 그림, 핑거, 2024)은 ‘어른이 되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책 표지를 살펴보면 노란 옷을 입은 한 소년이 두려운 표정으로 바닥의 균열을 바라보고 있다. 언제 갈라질지 모르는 날카로운 틈은 미지의 시간을 향하는 문이다. ‘갈라진 틈새, 균열’의 단어를 과감히 제목으로 앞세운 그림책 <크랙>이다.
작품의 첫 장을 넘기면 천진난만한 낯빛의 소년이 초록빛 나무들이 우거진 협곡으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다. 소년은 경사진 비탈길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졌다가 엉덩방아 찧으며 시간을 보낸다. 거친 선들과 노랗고 빨간 색깔들이 어우러졌던 배경은 어느 순간 침묵의 까만색으로 변한다. 주인공은 그 틈에서 ‘거대한 절벽 아래 보이지도 않을 점’과 같은 초라한 자기 모습을 본다. ‘깊은 밤과도 같은 동굴’에서 아이는 혼자다. 소년의 삶은 어느새 절벽 사이의 동굴에 갇혀버렸다. 아이가 바깥을 꿈꾸며 웅크리던 어느 날, 노랗게 하늘의 별이 부서져 내려온다. 그렇게 쏟아진 찬란한 황금색 별빛과 함께 소년은 잠에서 깬다. 아이는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미래를 생각한다. 협곡에서 겪었던 모든 순간은 아이가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사실 그동안 협곡에서 벌어진 일들이 주인공이 경험한 사건인지는 알 수 없다. 첫 장은 소년이 산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만, 책의 까만 활자는 “나무의 껍질을 본 적이 있어.”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아이는 겹겹이 갈라진 나무의 작은 틈이 마치 ‘거대한 협곡과 바위’와 같다고 서술한다. 그런 탓에 소년이 겪은 변화무쌍한 일들이 실제 사건인지, 아니면 나무의 틈을 바라보며 쌓은 마음에서 일어난 감정의 변화일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일어난 일이 내가 꾼 꿈일지, 아니면 나비가 꾼 꿈인지 모르는 유명한 장자의 일화처럼 말이다.
<크랙>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그림책이다. 한번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질문이 많이 생기는 책이기도 하다. 작가는 노랗고 빨간 원색의 색조와 거친 목탄화의 필체로 아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주변의 사소한 말에도 쉽게 발끈하고 울었던 그 옛날의 기억처럼, 거칠고 변화무쌍한 책 속의 풍경은 사춘기 시절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묘사한다.
사춘기는 왜 사람들에게 아픔과 불안의 시간을 선물할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른이 되기까지의 몇 년의 기간, 앞으로 살아야 할 두터운 인생의 두께에 비하며 가느다란 실금처럼 얇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아픔만큼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학작품 속 인물들도 혹독한 시간을 겪은 후에야 사춘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수레바퀴 밑에서>의 한스가 그랬고,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역시 그 기간을 견뎌내야 했다. 이 인물들은 때로는 친구 데미안의 도움으로, 혹은 여동생 피비와의 추억으로 갑자기 다가온 인생의 봄을 무사히 버텼다. 하지만 한스처럼 어른들의 비정한 잣대 속에서 본인의 시간을 안타깝게 끊어내야만 했던 인물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사춘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어른이 되는 시간은 아프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의 시간도 무겁고 두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고, 부모의 기대를 비롯한 주변인의 시선이 가득한 사춘기는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나의 사춘기에게>의 아이는 ‘차라리 내가 사라지면 마음이 편할까’라는 마음을 품다가 격한 감정으로 울부짖는다. 그림책 속 소년 역시 홀로 동굴에 갇혀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토해내고 난 뒤에야 평정심을 찾는다. 결국 사춘기의 열병은 ‘시간이 약’일 수밖에 없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면,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새살이 솟아나는 상처처럼, 갈아진 틈이 메워지는 나무의 결처럼,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아프고도 외로운 성장통을 그린 그림책 <크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