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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21. 2024

"소설을 말하다,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22)

“소설을 말하다,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22)


 오르한 파묵은 튀르키예인 최초로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이력에도, 그는 처음부터 소설가를 꿈꾸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작가는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에서 본인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한때 그림을 그렸고, 이스탄불에서 태어났고, 이스탄불에서 자랐고, 그럭저럭 호기심 많은 아이였고, 그 후 스물두 살에 어떤 이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말이다. 이스탄불의 화려한 과거와 퇴락한 현재를 지켜보며 자란 오르만 파묵은 서구화로 인한 전통의 상실과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 등을 그리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소설 <검은 책) (1990)으로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렸고, <새로운 인생>(1994)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영향력으로 작가는 보르헤스, 칼비노, 에코의 뒤를 이어 하버드대 ‘찰스 앨리엇 노턴’ 강의를 맡았다.


 <소설과 소설가>(2022, 민음사)는 오르한 파묵이 하버드대 강의 이후 출간한 강연록이다. 그는 여섯 차례의 노턴 강연을 통해 35년 동안 소설에 매진해 온 자신의 문학 여정을 털어놓았다. 1장‘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는 소설을 대할 때 생길 수 있는 독자들과 소설가들의 반응을 다룬 글이다. 작가는 작품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소박한 작가와 독자’ 그리고 세밀하게 분석하는‘성찰적 작가와 독자’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2장은 ‘파묵 씨, 당신은 이런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는 소설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독자들의 물음에 답하는 글이다. 3장 ‘소설의 캐릭터, 플롯, 시간’과 4장 ‘단어, 그림, 사물’그리고 5장 ‘박물관과 소설’은 작가의 소설 창작의 노하우가 가득 담긴 장들이다. 마지막으로 6장 ‘중심부’는 소설가들이 본인의 작품을 쓰고자 하는 중심 내용, 직감, 영감이 담긴 내용으로, 파묵은 본인의 관점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소설에 대해 아는 것들과 배운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총체”(p.176)이다.


 작가는 “파묵 씨, 당신은 이런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많이 들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독자들이 작품에 깊이 몰입한 나머지 소설 속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했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는 독자들이 읽고 있는 소설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잘 알고 있지만,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소설가와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겹쳐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작가가 비추는 ‘거울’ 속 상황들과 이야기를 보며 독자들이 본인의 관점으로 상상하며 따라가는 방식이다. 흥미롭게도, 파묵은 소설가들 역시 독자들의 이런 반응을 염두에 두며 소설 속 사건들과 이야기를 제시한다고 말한다. 그는 작가들이 독자가 작품 속“그 세부 사항이 작가의 경험이라 생각”하리라 여기며 글을 쓰고, 독자들 역시 “작가가 그 세부 사항을 경험했다”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읽는다고 설명한다. 파묵은 가상 이야기와 실제 경험을 두고 벌어지는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의 밀당은 마치‘거울 놀이’처럼,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계속 진행된다.”(p.56)고 전한다. 하지만 그는 독자들이 “작가를 가장 많이 잊는 순간”(p.52)에 소설가가 창조한 작품의 세계를 가장 자연스럽다고 여기며 몰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소설 예술의 강력한 특징”이기도 하다.


 파묵이 설명하는 소설의 캐릭터 론도 흥미롭다. 그는 일반적으로 문예창작교실에서 소설 쓰기를 할 때 먼저 주요 캐릭터를 구성하고 난 다음에 줄거리를 구성하고 배경을 넣는 것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 캐릭터를 구성하는 것보다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주변 풍경과 사건과 배경에 녹아들어 가느냐”(p.60)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마치 사람들이 실제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소설 속 캐릭터들도 작가가 구성한 배경과 상황을 살아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한다. 곧 파묵이 생각하는 “소설 예술에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소설 주인공들의 개성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소설 속 세계가 그들 눈에 어떻게 보이냐는 것”(p.70)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현실에 영향을 받는 순응적인 성향을 보이는지, 아니면 그 모든 역경을 무릅쓰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는 주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소설과 소설가>는 문학의 변방 터키에서 고전을 통해 독학으로 소설을 써온 오르한 파묵이 그동안 익혔던 소설 쓰기의 노하우가 가득 담긴 책이다. 오랜 시간 독자로서 많은 문학책을 읽어온 작가답게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내용들과 작가 지망생들이 깊이 새겨두어야 할 내용들을 가득 풀어놓았다. 말하듯이 편하게 서술한 가독성 높은 문장들과 풍부한 문학작품들의 예시들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미리 소설 캐릭터들을 구성하지 않고 상황과 배경 속의 상황에 맞춰 소설 속 인물 설정해야 한다는 창작 방법이나 문학 서사보다는 이미지와 같은 시각적인 면을 중시한 부분들은 독자들의 관점에 따라 낯설게 볼 여지는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소설 읽기를 좀 더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독자나 소설가, 그리고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선호할 저서이다.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에 쓰인 글, “나는 당신에게 진솔함을 보여 줄 테니, 당신도 나에게 인정을 베풀어 주길.(p.23)”처럼, 진솔한 소설 창작론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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