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한밤중에 일어난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얼마 전에 대종상을 휩쓴 영화 <서울의 봄>를 연상시킨다. 국민의 눈을 피해 진행되었던 1979년 12월 12일의 비상계엄령은 ‘봄’이 되었지만,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령은 생중계를 피할 수 없는 스마트폰 덕분에 ‘겨울’이 되었다. 45년 만의 난데없는 비상계엄령이 실패로 끝난 이후 많은 네티즌이 이와 연관된 패러디와 이야기로 인터넷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대부분 국민이 일과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0분, 그는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급작스럽게 이뤄진 일이었다. 그 시각 이후, 대한민국 정국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도 쫄깃하고 박진감 넘치는 일들로 둘러싸였다. 국회의원들은 헐레벌떡 국회로 달려갔고, 경찰들은 국회를 둘러싸며 철통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들과 함성들, 총으로 무장한 계엄군들은 헬리콥터로 침입을 시도했다. 이 모든 상황이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담겼다. 비상 계엄령 해제 가결을 위해 국회의장의 의장봉이 내리치는 순간 155분의 블랙 코미디가 끝났다. 하지만 6시간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장 떨리는 영화 한 편을 보았던 국민은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새웠다. 수많은 의문점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가슴 가득 간직한 채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대체 그는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많은 정치적 이유가 있겠지만, 이 사태 이후 펼쳐진 뉴스들과 기사들을 분석해 보면,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듯싶다.
“궁지에 몰린 굶주린 사자가 사람들을 향해 두 발을 휘둘렸다!”
그는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취임 전부터 대통령 관저 이전 문제로 민심을 답답하게 멍들인 그는 대통령 집무를 시작한 이후에도 계속 낮은 지지율에 허덕였다. 입시, 의료 문제 등에 이런저런 폭탄을 터뜨리던 그는 채상병, 이태원 사고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문제 해결로 숱한 원성에 휩싸이다가 결국 아내의 뇌물 수수 혐의와 명태균 게이트로 치명타를 입었다.
그가 차지한 자리는 공인으로서의 자아가 무조건 우선되어야 할 자리였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무조건 후려치며 밀고 나가기보다는 손 안의 곤봉을 내려놓고 백 번 천 번을 곱씹고 생각을 거듭해야 하는 자리였다. 국민의 말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더럽고 아니꼬워’ 보여도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고심해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가장 두렵게 여겨야 할 국민 대신 바로 옆의 아내를 먼저 챙겼다. 그렇게 공식적인 ‘사랑꾼’으로 등극하는 대신 국민의 대표 자리를 걷어차버렸다.
어쩌면 그는 사적으로 만났다면 술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만나기는 부담스러운 대한민국 꼰대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저냥 이름 있고 꼿꼿한 명사로 인생을 갈무리했을지도 모를 그였다. 하지만, 순간적인 명예욕인지, 주위에서 떠들어대는 감언이설 덕분인지 그는 그동안 걸어온 길과는 다른 선택으로 한순간에 정치인이 되었다. 맞지 않은 길을 선택한 탓에 그는 ‘국민 욕받이’가 되고 있다. 그의 이런 행보를 보며 다사다난한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쉬며 후회를 거듭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정치판은 오로지 해 본 사람을 위한 축제런가? 노련한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연일 비판의 각을 세우고 있다. 그와 한 대표를 겨냥해 "두 '용병'이 반목해 당과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소리를 높였고, “그중 용병 하나가 저 용병 탈당시키면 내가 사태를 수습한다."(출처: 영남일보, 2024, 12.05, 서민지 기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 사태의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민대표들이 급하게 꺼뜨린 불길은 여전히 잠재적인 불씨를 남겨 두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의 심지이다. 앞으로 그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과 붙잡아 둘 사람들의 다툼들이 어지럽게 펼쳐질 예정이다. 미래에 벌어질 답답한 난투를 생각하며 그동안 간과해 온 국민의 힘을 다시금 느낀다. 45년 만의 비상계엄령을 막아낸 것도 국민의 힘이요, 국민대표들을 지켜낸 것도 국민의 눈이었다. 가장 위급할 때. 가장 필요할 때마다 나라를 지켜낸 것은 국민뿐이었다. 이쯤 되면 권력욕에 눈먼 정치인들은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빌려준 권력으로 본인들의 정치 싸움에만 소리 높이지 않고 대한민국 곳곳에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는 민초를 먼저 바라봐야 한다. ‘빵과 서커스’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정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아귀다툼을 벌이며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이제는 국민을 위한 선택을 할 시간이다. 그들은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임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