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집 주변 초등학교 운동장이 무척 소란스럽다. ‘윙윙, 스르르’ 거리는 낯선 소음에 창문을 내다보니 노랗고 회색빛을 띤 굴착기가 열심히 땅을 파헤치며 움직이고 있다. 묵직한 무게로 한 번씩 둔탁하게 이동할 때마다 운동장 바닥에 듬성듬성 자라났던 초록빛 풀들이 난 땅바닥이 곱게 다듬어진 황톳빛 토양으로 바뀐다. 아이들의 발자취가 끊겨 흉물스러워 보였던 야생의 정글이 이제는 발을 디디고 뛰어다니는 땅바닥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책 <거인의 정원>은 거대한 정원을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한 거인과 그곳에서 뛰어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정원의 주인은 아이들이 자신의 정원에서 뛰어노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주변에 높은 담벼락과 울타리를 쳐서 방문을 막아 버린다. 계절이 바뀌어도 거인의 정원은 항상 겨울의 풍경은 담고 있다. 어느 날 아이들의 방문과 함께 봄이 찾아오자 거인은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정원을 개방한다. 이 작품은 함께 나누는 가치를 아름답게 그린 우화이다.
초록빛 풀이 무성한 초등학교 운동장 주변 공원을 산책할 때면 항상 이 동화가 생각난다. 봄, 가을의 학사 일정에 따라 정기적으로 울리는 벨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랫소리가 사라진 초등학교는 사람의 생기가 사라지고 자연의 힘이 활개를 치는 곳이다. 일 년에 두 번, 아이들의 발자국이 끊기는 방학 때마다 적막한 기운이 감돌고 운동장에는 푸릇푸릇한 잡초가 힘을 더한다. 하루하루 짙어지는 운동장의 풀빛을 바라보다 보면 한 해 두 해 줄어드는 학생 수가 생각나 덜컥 겁이 날 때가 많다.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라며 매일 불안에 떨었다는 중국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 오늘날 나의 마음에도 콕 박혔다. 아이들이 디디고 만지는 모든 것에 우리의 봄이 있을진대, 이제 성인이 된 큰아들과 고3이 된 둘째가 졸업한 이 초등학교에도 여지없는 출생률 감소의 칼날이 들이닥쳤다는 풍문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그리는 아이들은 적막한 거인의 겨울 정원에 봄을 불러오는 존재이지만, 오늘날의 아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최소한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씨앗이 아닐까 싶다. 축복처럼 다가온 씨앗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품속에 발아하여 울창한 숲을 만든다. 편하게 씨앗을 키우고 키우겠다고 마음먹을 수 없는 여러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왁자지껄 고군분투하며 아이들을 키웠던 과거의 잔상들이 늘어가는 내 나이만큼, 줄어드는 아이들의 발자국들만큼 고요히 가라앉는다.
소란스러운 마음과 다르게 바깥의 굴착기 소리는 이제 조용해졌다. 운동장 한가득 피어있던 초록빛 풀들이 모두 정리되고 여름방학 전의 매끈하고 깔끔한 땅바닥으로 바뀌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운동장에서 방학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열심히 뛰어다니고 체육 시간이면 공놀이를 할 것이다. 자연이 주는 고요한 평화도 좋지만, 아직은 인간이 주는 문명의 안락함도 감사하다. 비록 그 시작이 굴착기로 자연이 주는 풀빛을 갈아엎고 아이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질 땅바닥을 만드는 일일지라도. 학교가 문을 닫지 않아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익숙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안심이다.
긴 여름방학의 끝, 이제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