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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후 전화번호를 받은 적이 있나요?

by 하늘진주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내세울 것 없는 실수투성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그냥 즐기는 거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야

<아마추어/미도와 파라솔>


막 종영이 된 tvN 주말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은 서투른 것이 많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전공의들의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료계의 갈등 속에서 이 드라마가 성공한 이유는 실수 속에서 성장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가감 없이 잘 그려낸 탓이다. ‘아직 모른 것이 많고’ ‘실수투성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 노력하는 등장인물들을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그 때문에 고민하는 내 모습이 생각나 더 애착이 간다.

학교들을 떠돌며 학생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외부 강사의 경우, 쉽게 정을 주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애써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종종 학생들의 긍정적이고 즐거운 환대에 신이 나서 수업을 한 적도 많이 있지만, 결국은 안다. 외부 강사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학생들의 머릿속에서는 사라져 버릴 신기루와 같은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하는 독서토론 수업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참 궁금할 때가 많다. 각 반으로 들어가는 학교 수업들과는 달리, 방과 후로 진행되는 수업은 학생들의 신청으로 유지된다. 해마다 들쑥날쑥한 학생들의 인원을 보면 도대체 요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내가 고른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내가 하는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시간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에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점점 불쌍한 망상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전에 얼른 생각의 스위치를 꺼 버린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찜찜함이 눈앞을 아른거리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좀 익숙하고 편해질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난 수업을 준비할 때는 긴장이 앞선다. 항상 ‘아마추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산다. 세상에는 배울 것이 너무 많고, 공부해야 할 것투성이다. 외부 강사 생활 8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조금은 유연해진 표정, 어떤 상황에도 쉽게 당황하지 않는 마음가짐 정도일 것이다.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표정을 보면 ‘지금 이 수업에서 뭐가 부족할까’를 먼저 떠올리고, 매번 수업 후 나만의 평가를 한다.


얼마 전에 끝난 긴 프로젝트의 수업은 유달리 힘든 시간이었다. 사실 학생들 때문에 힘들었다기보다는 ‘수업 욕심’이 많고 ‘매번 다양하고 완벽한 결과물’을 요구하는 담당 선생님 때문에 더 힘들었던 수업이었다. 매시간 수업을 마칠 때마다 그 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수업의 마지막 날, 몇몇 학생들이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한 학생은 나에게 꼭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적은 꼬깃꼬깃한 종이조각을 건넸다. 외부 강사 8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학생의 전화번호였다. 아이들과의 이별은 슬펐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매번 부족하다 느끼는 수업이었지만, 학생들은 내 수업을 무척 좋아해 준 것 같아 기뻤다.


이제 또다시 다른 학생들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매번 반복되는 이별과 만남, 새롭게 만들어야 할 수업 기획들 때문에 버겁고 힘들어 마음속에는 항상 ‘당장 그만둘 거야’라는 마음의 사직서를 품고 산다. 그럼에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아는 까닭이다. 내 수업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같이 기댈 수 있는 동료 강사들이 있어 행복하다. 아니 아직은 버틸만하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나의 미래를 위해 내 이마에 ‘오늘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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