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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가치는 잃어버린 후에야 무게추를 머금고 온다.

by 하늘진주


생각해 보면, 내 생각은 항상 지금이 아닌 미래를 향해 있었다. 눈에 띄지도 않고 도드라지도 않는 이 평범한 일상보다는 누군가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고 손뼉 쳐 주는 그런 삶이 훨씬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나를 위한 글을 쓴다 말하면서도, 신경을 안 쓴다 말하면서도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고, '좋아요'라는 그 작은 칭찬이 무척 갖고 싶었다. 어쩌면 아닌 척하면서 빛남을 꿈꾸고, 평범한 삶을 꿈꾼다고 읊조리면서 유명한 작가가 되기를 원했던 부조리한 인물이 바로 나라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함의 가치는 잃어버린 후에야 커다란 무게추를 머금고 다가온다고 했던가.


요즘 난 지금까지 누렸던 일상의 평범함에 감사하기보다는 더 특별하고 다른 삶을 꿈꾸었던 나의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건강하게 항상 옆에 계실 줄만 알았던 친정 부모님이 한꺼번에 아프시다. 한 분은 암으로 험난한 치료를 시작했고, 한 분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 예의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이다.


해가 갈수록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점차 연로해 가는 걸 알면서도 '내 자식 챙기기가 바빠서', '내 일이 급해서' 등등의 이유로 나몰라라 했다. '자꾸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말이 내 앞 길과 내 자식의 미래를 막는, 세상물정 모르는 투정처럼 느껴졌다. 그곳의 젊은 사람들마저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상황에 적막마저 감도는 고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일상을 완전히 무너뜨린 부모님의 병환 앞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다. 부모님 말씀처럼 지금 일을 모두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면 이 모든 일이 해결될까? 갑작스러운 병의 악화마저 대처 못해 생의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라던 열악한 지방 의료 체계를 계속 믿을 수 있을까?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효심만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어쩌면 누구나 누리고 있다고 믿었던 일상의 평범함은 건강한 몸과 삶을 건사할 수 있는 돈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온할 일상을 누릴 때는 모르지만, 갑작스레 잃어버린 후에는 되찾기 위해 수백, 수천 배의 힘으로 저 아래 떨어진 무게추를 끌어올려야 하는 신의 축복 말이다. 예전의 일상에서 몇 발 짝 벗어난 요즘, 다시금 예전의 평범한 하루를 되찾을 수 있기를 고대하며 기나긴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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