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 필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절망을 받아들이는 방법

by 하늘진주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가 불행 앞에서 취하는 행동 대처법이 나온다. 쌍둥이 자매로 태어났지만, 각자 선택한 남편에 따라 180도로 다른 결혼 생활, 주인공의 어머니는 끝도 없이 몰아치는 비극 앞에서 ‘과장법’이라는 방법으로 그 상황을 헤쳐 나간다.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모순> p.152)


갑자기 찾아오는 불행한 일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한다.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극복할 것인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의 저자는 갑자기 들이닥친 지진 앞에서 평생 모아 온 연구 자료들이 사라질 위기에서 보인 데이비드의 태도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는 그 위기 앞에서도 광적인 방법으로 본인의 자료들을 복구시킨다. 이런 모습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모든 게 사라지고 부서지고 희망이라곤 없는 최악의 날에조차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게 한 것일까?”(p.126)


저자는 이런 태도가 막연한 긍정주의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옛날 현자들이 앵무새처럼 뱉어대는 ‘카르페 디엠’과 같은 ‘현실을 살아라’라는 구호는 눈앞에 닿친 절망을 완전히 극복하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불행 속에서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vs 물이 반이나 남았네’와 같은 교과서적인 고민은 할 수가 없다.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긍정적인 면을 내뱉기에는 눈앞의 절망이 거대하다.


그렇다면 결국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이고 얼기설기 시간을 들여 메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 저자는 ‘선택’이야말로 절망을 구하는 가장 최종 결론이라고 꼬집는다. 때로는 <모순> 속의 어머니처럼 나의 불행을 극대화해 ‘비극의 히로인’이 되어 감정에 푹 빠져있기도 하고, 데이비드처럼 눈앞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광적인 열기로 수습하기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지는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아닐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손 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