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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허상에 질문을 던지다’

<혼모노>(성해나, 창비, 2025)

by 하늘진주


일반적으로 창세기 속 선악과로 여겨지는 ‘사과’는 아담과 이브를 한순간에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세상으로 빠뜨린 과일이다.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현실 속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찾는 일은 태초의 연인이 겪었던 것처럼 많은 질문과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2025년에 출간된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창비, 2025)의 책 표지는 두 개의 반쪽 사과 그림과 ‘진짜’를 뜻하는 각 나라 언어를 배치하며 작가의 메시지를 담았다. 미묘하게 엇갈리게 배치된 반쪽 과일의 표지는 까끌까끌한 질감의 초록색 사과와 매끈매끈한 면의 빨간 사과를 대비시키며 읽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한입 베어 물면 과즙이 흐를 듯한 두 개의 과일은 작가 성해나가 던지는 ‘진짜’와 ‘가짜’의 진리를 파헤치는 ‘선악과’로 보인다. 소설집 <혼모노>는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단편소설 모음이다.


성해나(1994년~)는 요즘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는 작가이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오즈’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소설가는 2024 이효석 문학상 우수 작품상, 2024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고 온라인 서점 예스 24가 선정한 ‘2024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작품은 치밀한 취재와 정교한 구성을 바탕으로 일상의 균열과 불편한 진실, 인간의 욕망을 집요하게 묘사해 낸 리얼리즘의 세계를 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중 <혼모노>는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지역, 정치, 세대 등 현대사회의 세태 풍경을 선명하게 묘사해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성해나는 한 인터뷰를 통해 본디 ‘진짜’라는 긍정적인 뜻을 지닌 ‘혼모노’가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거짓일지라도 다수가 믿으면 진실이 되어버리는 지금의 시대상을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이 작품집의 창작 의도를 밝혔다.


<혼모노> 총 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물을 설계한 이들의 뒷이야기를 그리는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의 1980년대 독재정권 시대부터 재미교포 3세가 ‘태극기 시위’와 함께 한 한국 방문기를 담은 ‘스무드’의 2000년대까지 세심한 관점으로 역사 속 상황들을 조명하고 있다. 성해나의 상상력은 이후 다양한 계층의 사연에 한층 뻗어간다. 그녀는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에서 결점이 있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김곤’을 향한 이율배반적인 팬덤문화를 다루고 ‘혼모노’에서 ‘신령’으로 모시는 신을 뺏긴 중년의 박수무당의 ‘진짜’를 찾는 과정을 그린다. 또한 ‘우호적 감정’에서는 직장 내 사람들의 표면적 친밀함에 숨겨진 사람들의 민낯을, ‘잉태기’에서는 핏줄을 사이에 둔 며느리와 시부의 적나라한 갈등을, ‘메탈’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메탈 밴드를 함께 했던 세 친구의 성장기를 그려냈다. 이처럼 작가는 각 작품 속에서 현대사회가 품고 있는 세대 갈등이나 전통과 현대의 대립 등 사회적 쟁점 등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은 현대사회에서 혼재된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진짜와 가짜’, ‘친밀함과 위선’, ‘욕망과 죄책감’, ‘소유욕과 집착’ 등 등등 각기 다른 상황에 놓인 사연 속 등장인물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소설가의 구성대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가짜와 진실의 세계를 오가며 내적 갈등에 휩싸인다. 성해나는 등장인물들의 이런 심리를 ‘길티 클럽’ 속 한 영화팬과 ‘우호적 감정’ 속 직장 동료들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모습 속에서 차분한 필치를 보여준다. 책 속 인물들은 문명인의 가면을 쓴 채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처한 상황들을 건조하게 풀어간다. 그런 성해나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가장 날 것처럼 드러낸 두 개의 단편이 바로 ‘잉태기’와 표제작 ‘혼모노’이다.


단편 ‘잉태기’는 7편의 단편 중 독자들이 세대와 성별에 따라 가장 호불호를 느낄만한 작품인데,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을 앞면에 내세운다. 결혼 초부터 점층적으로 쌓인 이들의 분란은 원정 출산을 앞둔 자식을 사이에 두고 공항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그들은 출산 기미를 보이는 핏줄 앞에서 무엇이 ‘진짜 해야 할 일’인지 생각지 않고 아귀다툼을 벌인다.


괴성이 오간다. 오가고 오가다 끝에는 누구 것인지도 모르게 섞여버린다. (중략) 우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p.297)

독자들은 이 갈등을 지켜보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답답함을 품지만, 작가는 매끈한 결말을 들려주지 않는다.


표제작 ‘혼모노’는 ‘진짜’와 ‘가짜’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등장인물의 자각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신령이 떠난 삼십 년 경력의 ‘박수무당’과 새 신을 받아들인 ‘신애기’는 경쟁적으로 작두춤을 추며 ‘내가 진짜임’을 증명하려 한다. ‘피와 땀’이 흐르는 시각적 묘사와 신명 나는 장단의 현란한 문장 속에서 결국 박수무당은 깨닫는다.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p.153)라고. 마침내 그는 진짜와 가짜를 찾는 갈등을 과감히 벗어나 신령의 힘을 빌어 ‘남을 위해 비는 것’이 아닌 피 흘리는 고통을 이겨낸 ‘진짜 나를 위한 삶’이라는 정체성을 찾는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는 간결한 문체와 늘어지지 않는 이야기 전개로 가독성이 뛰어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있을 법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어 성별, 연령, 성향, 계층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독자들이 작품 속에 푹 빠져 책 장을 쉴 새 없이 넘기게 한다. 한마디로 대중성과 대한민국 사회상을 잘 잡은 영리한 소설이다. 게다가 각 이야기의 마무리 역시 열린 결말로 끝나며 무한한 상상 여지까지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 의도는 명쾌한 결말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운 지점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영화감독,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접하고 싶은 독자, 2025년 베스트셀러 소설을 접하고 싶은 사람들이 눈여겨볼 작품이다. 요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 모음집, <혼모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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