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줌마, 바쁘지만 느린 수원에서 다정함을 배우다
시골에 계신 친정아버지가 서울 강남의 한 대형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아침은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 내 집이 최고라고 여기며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는 자식 집을 포함해 다른 곳에 머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그래서 매번 새벽 고속버스를 타기 전날이면, 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는 몇 시까지 오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곤 했다. 그러면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무조건 집을 나서야 했다. 문제는 아버지가 도착하는 시간이 늘 도로에는 차가 가득하고, 지하철에는 직장인들이 꽉 들어차는 출근 시간과 겹친다는 점이었다. 아이들 아침을 제대로 챙길 새도 없이 뛰쳐나가도, 도착은 늘 5분에서 10분쯤 늦었다. 만원 출근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
그날도 역시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터미널로 향하는 길이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아침이었고, 서울로 향하는 출근길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보다 두세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지만, 궂은 날씨 앞에서는 그마저도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가는 빨간 버스 안에서 나는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며 속으로 되뇌었다. ‘제발, 오늘만은 아빠가 화를 내지 않기를.’
하지만 내 간절한 소망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니,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하냐?” 하며 터미널이 떠나가도록 화를 냈다. “오늘 비 때문에 도로에 차가 너무 많아서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만, 아버지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 버렸다. 차와 사람으로 가득 찬 지독한 출근길, 두세 시간을 여유로 잡아도 안심할 수 없는 수도권의 도로 사정 따위는 이미 당신의 안중에는 없는 듯했다. 고향에서는 30분, 길어야 한 시간이면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었으니까. 결국 아버지는 서울의 복잡함이 아니라, 더 서두르지 못한 내 부주의만을 탓하고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수도권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소위 ‘헬’이라 불리는 출퇴근 도로 사정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는 말을 증명하듯, 아침이면 서울로 향하는 빨간 광역버스와 지하철에는 동서남북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가득 찼다. 특히 초록색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를 지키며 품위를 유지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꽉꽉 눌리는 찰떡마냥 찌그러지더라도 '제발 나 좀 데려가라'라고 애걸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열리는 지하철 문으로 몸을 재빨리 밀어 넣었다. 망설이는 5분이 한 시간 지각으로 돌아오는 출근길에서, 망설임이란 애초에 허락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몰리는 도시를 떠나 자연과 여유를 누리는 삶을 진짜 부자의 인생이라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수도권에 살며 내가 체감한 ‘부’의 기준은 전혀 달랐다. 이곳에서 삶의 값어치는 알짜배기 노른자 같은 서울의 중심과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매겨졌다. 진짜 부유한 서울 주민들의 거주지는 한강이 보이고 조용하면서도, 병원과 학교, 문화시설까지 서울의 인프라를 빠짐없이 누릴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경계 밖에 선 지역들은 삶의 질, 학군뿐만 아니라 서울에 얼마나 빨리 닿을 수 있는지에 따라 집값이 오르내렸다.
서울에 볼 일이 있을 때마다 대중교통 앱으로 ‘빠른 길 찾기’를 누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가는 데 두 시간, 돌아오는 데 두 시간. 총 네 시간을 북적이는 사람들과 함께 빨간 버스와 지하철에서 보내는 하루다. 특히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날의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서울을 오가며 흘린 땀과 조급함, 설명되지 않는 지각의 죄책감 속에서 나는 오늘도 수도권의 하루를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