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줌마, 바쁘지만 느린 수원에서 다정함을 배우다
영화 ‘극한 직업’의 명대사,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통닭인가, 갈비인가"라는 말처럼 수원의 맛을 잘 요약하는 표현도 드물다. 통닭집에 위장 취업한 형사가 수원 왕갈비 집 비법 소스로 양념치킨 메뉴를 만들었다는 에피소드에는 현재 수원을 대표하는 ‘맛’이 다 담겨 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왕갈비와 고소하고 짭짤한 통닭. 한 번 맛본 이후 ‘수원화성’의 도시로만 여겼던 수원을 내게 단숨에 ‘맛의 도시’로 각인시킨 경험이었다.
처음 수원에 자리 잡고 귀한 손님을 초대해야 했을 때, 추천받은 곳은 도심에 있는 한 유명한 왕갈비 집이었다. ‘아니, 갑자기 왕갈비라고?’ 수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당시의 나에게 이 메뉴는 꽤 낯설었다. 과연 맛이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날의 손님 초대는 성공적이었다. 김치 하나, 나물 하나까지 허투루 내놓지 않는 상차림 덕분에, 귀한 손님을 모시고 가도 실패할 일이 없는 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날 이후 수원 왕갈비는 내게 ‘처음에는 낯설지만, 한 번 맛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음식’으로 남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원에서 ‘수원 왕갈비’가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정조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신도시를 꿈꾸었던 정조는 농사를 장려하며 백성들에게 소를 나누어 주었고, 수원에는 전국 3대 우시장 가운데 하나가 형성되었다. 소가 귀하던 시절에도 고기가 비교적 풍부했던 이 지역에서는 갈비를 큼직하게 썰어 간장 대신 소금으로 양념하는 방식의 ‘수원 왕갈비’를 자연스럽게 탄생시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격이 만만치 않은 탓에, 이 왕갈비는 여전히 아주 특별한 날에만 찾는 ‘귀한 음식’으로 남아 있다.
왕갈비가 귀한 사람들과 나누는 ‘특식’이라면, 팔달문 인근 통닭거리의 가마솥 통닭은 하루를 버텨낸 서민들을 달래주는 투박한 음식이다. 남문 통닭거리는 1970년대에 처음 형성되었다. 당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시장 사람들은 닭을 가장 만만한 단백질로 여겼다. 한 통닭집에서 가마솥에 기름을 붓고 통째로 닭을 튀기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늘날 ‘수원 통닭거리’의 시작이 되었다. 50년이 넘게 쌓인 고소한 기름의 내공이 남문 시장 인근에서부터 코끝을 건드리며 군침을 자극한다.
하지만 막상 통닭거리를 찾아가 가게에 자리를 잡고 통닭을 뜯는 일은 쉽지 않다. 북적대는 사람들, 비좁은 가게, 식당 안을 녹진하게 채운 기름 냄새 속에서 나 역시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가 긴 줄에 놀라 노란 종이봉투에 통닭을 포장해 돌아온 적이 있다. 그렇다고 집에서 먹는 통닭이 크게 아쉬운 것도 아니다. 저렴한 가격에 큼직한 통닭 한 마리를 나눠 먹을 수 있고, 덤처럼 얹어 주는 닭발 튀김이나 똥집 튀김은 생각보다 별미다. ‘공짜면 다 좋다’는 솔직한 마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풍족한 시장 인심이 이 통닭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수원살이 20년이 넘은 지금, 나는 더 이상 수원 왕갈비집을 예약하지도, 수원 통닭거리에서 줄을 서지도 않는다. 수원 곳곳을 누비며 호기심 가득했던 이방인의 시선은 어느덧 매일 같은 길을 오가는 생활인의 무던함으로 바뀌었다. 귀한 손님을 모실 때면 ‘수원 왕갈비집’을 찾기보다 레시피를 찾아 집에서 갈비찜을 하고, 수원 통닭거리 대신 집 앞 통닭집에서 포장을 한다. ‘다 그 맛이 그 맛일 거야.’ 툭 내뱉는 이 말속에는, 한 도시에서 20년을 살아왔다는 느릿한 여유가 스며 있다. 이제 수원은 구경하며 지켜봐야 할 관광지가 아니라,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라는 말은 어쩌면, 지금 내가 머무는 이곳을 가장 소중히 여기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특별했던 장소는 어느새 일상이 되고, 기계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수원 왕갈비든 통닭이든 동네 치킨집의 양념치킨이든,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오붓하게 먹고 싶은 마음은 결국 다 비슷하다. 맛있는 것 앞에서는 왕과 시민의 경계도, 관광객과 생활인의 구분도 무의미해진다. 아이들이 원할 때마다 기꺼이 동네 치킨집으로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무거운 가장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 역시 한때는 아버지 손에 들린 노란 치킨 봉투를 보고 군침을 삼켰을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갈비 양념의 달콤함보다도, 통닭의 진한 기름내보다도 더 따뜻한 맛을 건네고 싶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는 그에게, 오늘도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