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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17. 2021

<무릎 딱지>-책 리뷰

사랑하는 엄마와 이별하는 법

 사랑하는 엄마와 이별하는 법

<무릎 딱지-샤를로트 문드리크 글/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이경혜 옮김/ 한울림어린이>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다 보니 멀게만 느껴졌던 ‘나이 듦, 죽음, 상실’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도 먼 지방에 살고 있는 대학 친구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라 직접 조문은 못 가고 친구들과 ‘십시일반’ 계비를 모아 아픔을 함께 나눴다. 예전에는 주변의 가슴 아픈 이별들이 나와는 먼 이야기로만 느껴졌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드디어 나도 사랑하는 이의 상실과 이별을 받아들일 나이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남겨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이의 마음도 아프지만,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남겨진 자들의 마음은 더 고통스럽다. 오늘 소개할 그림책, <무릎 딱지 /샤를로트 문드리크 글/올리비에 탈레크 그림/한울림 어린이>는 너무도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다룬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온통 새빨간 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책의 겉면에는 한 아이가 시무룩하게 자신의 무릎에 난 빨간 상처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얼굴은 눈과 코의 옆모습만 보여 실제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독자들은 노란 글씨로 거칠게 쓰인 ‘무릎 딱지’라는 제목과 무채색으로 그려진 아이를 의아스럽게 바라보며 책을 넘기게 된다.


 책의 첫 문장은 다소 충격적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밤새 자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달라진 건 없다.

 나한테 엄마는 오늘 아침에 죽은 거다.”

 아직 엄마의 죽음도 잘 알지 못하는 나이, 그림 속의 아이는 빙글빙글 도는 비행기 모빌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이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큰 슬픔을 다가오지만 아직 죽음과 삶의 경계조차 잘 모르는 꼬마 아이를 보고 있자면 ‘어떻게’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아이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리다. 죽음을 앞둔 엄마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이제 힘들어서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고 영영 떠난다’고. 아이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빨리 가 버릴 거면 낳지 말지 왜 낳았냐’고 화를 내며 운다. 하지만 떠난 엄마만 계속 생각하기에는 지금 집안 분위기가 너무 이상하다.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빵도 잘 못 만들고’ 자꾸 울고 있는 아빠를 바라보며 다짐을 한다. ‘걱정 마, 아빠. 내가 아빠를 잘 돌봐 줄게.’

 아직 엄마와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은 꼬마는 혹시라도 엄마의 냄새가 새어 나갈까 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닫는다. 아이는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빠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는다. ‘엄마’라는 말만 꺼내도 아빠가 울기 때문이다. 주인공 아이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엄마의 목소리와 기억들이 지워질까 봐 온 몸의 구멍을 꼭꼭 막는다. 숨을 쉬는 코만 남겨둔 채.

 꼬마는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생겨도 행복하다. 어디선가 걱정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무릎에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계속 상처를 낸다. 아이의 생각에 자신의 몸에 흐르는 상처와 피는 엄마와의 유일한 소통창구이다.


 아이는 자신의 무릎에 딱지가 생기고 자신의 아픔이 가시면서 할머니도 돌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내가 돌볼 슬픈 어른이 둘이나 생긴다’며 할머니와 아빠를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한다. 아이는 자신의 슬픔을 애써 누르며 어른들의 아픔을 먼저 살핀다. 하지만 할머니가 닫은 창문을 활짝 열자 아이는 그동안 ‘꾹꾹’ 눌려 왔던 감정들을 모두 터뜨리며 소리를 지른다.


 “안 돼! 열지 마. 엄마가 빠져나간단 말이야.”

 나는 마구 몸부림쳤다. 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힘이 다 빠졌다.


 너무 어려 아직 이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아이. 할머니는 그런 꼬마를 감싸 안으며 진짜 슬픔을 애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로 여길 떠나지 않아.”

 아이는 온몸의 구멍과 집의 창문을 다 막으며 죽은 엄마의 기억을 붙잡았다. 꼬마는 오로지 흘러넘치는 감정을 막고 자신의 몸을 상처 내는 것만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난 뒤, 비로소 소년은 죽은 엄마의 기억이 영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심장이 쿵쿵 뛸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며 엄마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가슴속에서 있다고 느낀다. 무릎에서 새로 돋아나는 새살과 함께 아이는 비로소 ‘엄마와 진짜 안녕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죽고 사는 길은 정해져 있다. ‘죽음’ 이란 단어는 입 밖으로 낼 수 없을 만큼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느낀다. 삶은 정해져 있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가 오리라는 것을. 우리도 이 아이처럼 서로의 추억을 붙들고 현실을 외면하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부정할 때가 올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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