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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17. 2022

김영하의 <검은 꽃>ㅡ독서서평

역사의 진실 앞에서 나의 선택은?

무지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을 읽고 난 뒤, 비참한 역사적 진실 앞에서 '모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계속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소설은 소설가 김영하를 검색하면 항상 같이 따라 나오는 세트메뉴와 같은 존재였기에 제목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는 짐작조차 못했지만 말이다. 작가 김영하의 필력이야 그의 문체를 필사한 적이 있기에 소설의 가독성만큼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그의 소설들은 나에게 복불복이었다. 어떤 소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만큼 재미있었지만, 또 다른 소설은  내 취향과 맞지 않아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 <검은 꽃>만큼은 왜 지금에서야 읽었을까 후회할 정도로 수작이었다. 소설가 김영하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만약 내 소설 중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바로 <검은 꽃>’이라고 밝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검은 꽃>은 역사소설로, 1905년 4월 4일, 대륙 식민 회사 화물선,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를 향해 떠난 1033명의 조선인 이야기다. 당시 조선 정세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로 향해 몰려오는 열강들의 횡포로 혼란스러웠고, 일본의 낭인에 의해 무참히 아내를 잃은 조선의 왕은 힘이 없었다. 누구 하나 보살펴 주지 않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굶주리고 막막한 백성들은 '일터와 돈과 따뜻한 밥이 기다린다'는 멕시코로 가기 위해 제물포항으로 몰려들었다. 낯선 나라에서의 꿈을 꾸는 사람들은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농민, 제대 군인, 박수무당, 가톨릭 신부, 왕족인 양반들 등 모두가 헐벗은 조선에서 벗어나 미국 아래 아주 먼 나라에서의 행복을 꿈꾸었다.


 온갖 뱃멀미와 병, 굶주림의 긴 항해 끝에 도착한 멕시코는 천국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지옥이었다. 4년 동안의 노예 살이라는 ‘사기 이민’을 당한 1000여 명의 조선인들은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들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에네켄’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베이며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이 ‘에네켄’은 길이 2m의 식물로, 줄기와 가시가 억세고 잎 모양이 용의 혀와 유사하여 ‘용설란’이라 불리는 열대 선인장이다. 조선인들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먼 멕시코에서 손에 익숙지 않는 에네켄을 매일 수확했고, ‘애니깽’이라 불리며 4년을 견뎠다. 타향살이가 잔인하도록 고통스러웠지만, 언젠가는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들 앞에 전해진 조국의 소식은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조선인들이 마지막 생명의 쪽지처럼 간직했던 종이 여권은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1910년 8월 16일, 식물처럼 연명하던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략)

고국의 물정을 잘 모르던 멕시코 이민자들은 돌아갈 나라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작은 종이쪽지를 꺼내 들었다. 유카타의 건조한 기후와 오랜 유랑생활로 이미 누렇게 변색되어버린, 그들을 한 달이나 제물포 항구에 붙들어놓았던 대한제국 정부가 발행한 조악한 여권들은 이로써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p277)


 돌아갈 조국이 없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밖에서, 직장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마음껏 투정 부릴 가족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먼 타향에서 국민을 보호해 줄 조국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조선인들의 선택은 '승무 학교'를 만들어 의병을 양성하는 거였다. 제 몸 앞가림하기도 힘든 현실 속에서 멕시코 이민자들은 허약한 조국을 생각하며 지킬 방도를 찾았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의 나라는 일찍이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천대하여 이 지경이 된 것이다. 하니, 제대 군인이 물경 200명이나 되는 이곳이야말로 새로운 독립의 군대를 창설하기에 맞춤한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일본의 감시도 없으니 그런 일을 도모하기에 더없이 편리하다.

  (중략)

 계약이 끝나 농장을 나가게 되거든 돈을 각출하여 학교를 세웁시다. 무를 숭상하는, 그렇지, 승무학교가 좋겠습니다. 그리고 군대도 만들어두어야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미국 군대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가 일본 놈들을 무찌르게 될 겁니다. 그러자면 미리 군대의 편제를 갖추어놓아야 합니다. (p255-256)


 이 책에서는 농민, 몰락한 양반, 박수무당 등 저마다 애달픈 사연을 지닌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은 조선 여인, 이연수댜. 원래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쉽게 맞닥뜨리는 사람들이 바로 어린이요, 여인들이요,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이다. 당시 몰래 신문물을 꿈꾸던 사대부 규수인 연수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급하게 짐을 꾸려 가족들과 함께 멕시코로 갔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도착한 멕시코의 상황은 그녀의 예상보다 더 비참했다. 뼛속까지 조선 선비였던 아버지, 이종도는 양반 의식을 들먹이며 에네켄 노동을 완강히 거부했다. 게다가 그녀의 남동생은 너무 어렸고, 어머니는 몸이 약했다. 그러다 배에서 만난 첫사랑 이정과 잠시 아름다운 미래를 꿈꿔 보지만, 그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훌쩍 그녀 곁을 떠나고 만다. 꽃다운 나이의 연수는 이정의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세상의 차가운 시선들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표류했다. 주권을 잃어버린 조선이 일본에게 유린당한 것처럼, 그녀는 그저 남성들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제목은 <검은 꽃>이지만, 책에는 ‘검은 꽃’이라는 묘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용설란’의 꽃이 검은색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이 선인장의 꽃은 노란색이었다. 아마도 작가는 뜨거운 멕시코의 햇살 속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갔던 우리네 조상들을 그렇게 은유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혹은 연수와 같은 여인들이, 나라 잃은 백성들이 모두 ‘검은 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제 강점기에서 대부분의 조선 백성들은 비참했다. 이는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익히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후손들은 ‘애니깽’ 단어 속에 숨겨진 1033명의 멕시코 조선인의 사연에 대해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쓰는 단어들에는 갖가지 사연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그 사연들을 파헤치는 것은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잘 몰랐다는 무지'가 잊힌 조상들의 비극을 상쇄시킬 수 있는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검은 꽃>을 읽고 난 뒤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조국에 화가 계속 났지만,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아무것도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나의 무관심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차가운 무관심의 뒤에서 우리의 역사를 외면하고 싶지 않은 후손들에게 꼭 이 책, <검은 꽃>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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