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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27. 2022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독서 서평

얼어붙은 고정관념을 깨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읽으면 읽을수록 해석이 달라지는 작품이다. 이 책처럼,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독서 감상이 달라지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 <변신>은 매번 읽을 때마다 얼어붙은 사람들의 관점을 뒤흔들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변신>의 구성은 단순하다. 갑자기 벌레가 된 외판원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외면을 받으며 쓸쓸히 죽는다. 하지만 그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은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과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p9 민음사)


 평범하게 잠을 자던 한 성인 남자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신한다는 설정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은 많은 독자들은 과연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지점부터 논쟁을 시작한다. 사실 ‘변신 모티브’는 전혀 생소하지 않다. 이 설정은 전 세계의 모든 신화, 전설, 민담에서 폭넓게 발견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테네 여신과 베틀 경연을 하던 아라크네는 거미로 변했고, 그리스 주신이었던 제우스는 시시때때로 제 모습을 ‘소’, ‘햇빛’등으로 변신시키며 사리사욕을 채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왕권의 신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박혁거세,’ ‘수로왕’ 등 많은 왕들이 알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츠 카프카가 사용한 ‘한 남자가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는 설정은 놀랍지 않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처음 접하면 ‘그레고르 잠자가 정말 사람으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독자들은 그레고르의 잠자의 과거를 돌이켜 보며 자연스레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한 후에도 새벽 다섯 시에 떠나는 기차를 잡기 위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만일 내가 그 상황이라면’라는 상상을 한 번쯤 해 볼 것이다.


  그 차 시간에 대려면 미친 듯이 서둘러야 할 텐데 견본 꾸러미도 아직 꾸리지 못한 데다가 그 자신은 도무지 몸이 개운치 않은 데다 잘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기차 시간에 댄다 하더라도 사장의 호된 꾸지람은 면할 수가 없다. (p12)


 얼마 전에 <변신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회사원 회원들은 그레고르의 잠자의 기분은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교통사고가 일어나도,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자신이 아파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가족이 아니라 제일 먼저 회사에 연락할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든 생존하려 애쓰는 벌레처럼 나약한 사람들의 본성을 슬며시 건드린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지, 정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질문들을 던져 준다.


 그런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독자들은 자연스레 그레고르의 가족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의 가족 관계는 참 기이하다. 그레고르는 오 년 전 아버지의 가게가 땡전 한 푼 없이 파산했을 때 기진맥진하며 매일 소파에 기대고 있던 아버지, 몸이 약한 어머니 그리고 어린 여동생 그레테를 대신하여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 위해 날마다 새벽기차를 타며 힘든 생활을 했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가여운 가족들을 위해 생계를 꾸려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벌레가 된 후 밝혀진 진실은 가혹했다. 돈 한 푼 없다고 생각했던 집에는 실제로 빚을 갚을 만한 돈이 있었고, 아버지는 경제생활이 가능할 만큼 건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레고르는 방문들 뒤에서 이 기대하지 않았던 신중함과 절약에 대해 기뻐하며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남은 돈으로 아버지가 사장에게 진 빚을 갚아 나갈 수도 있고, 그랬더라면 그가 이 직책에서 벗어날 그날이 훨씬 앞당겨졌으리라. (p40-41)


 저 사람이 아버지란 말인가? 전에 그레고르가 업무 여행에서 돌아오면, 지친 채 침대에 묻혀 누워 있던 사람,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어 기쁨의 표시로 다만 팔을 들어 올리며 가운을 입은 채 등받이 의자에 앉아 그를 맞아주던 사람, (중략)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꼿꼿이 똑바로 서 있다. 은행 사환들이 입는 것 같은 금단추가 달리 빳빳한 푸른 제복을 입었는데(중략) 여느 때 봉두난발이었던 흰머리는 거북하도록 한 올 흐트러짐이 없는 빛나는 가르마를 타서 납작하게 빗질되어 있었다.(p52-53)


 그레고르 잠자 가족의 가난은 이미 예전부터 그레고르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가족들의 협업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헌신은 너무나 당연히 여겼다. 그리고 그가 벌레로 변한 뒤에도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자신들의 생활만을 생각하며 오랜 세월 봉사하고 희생했던 그레고르를 점점 외면하기 시작한다.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가장의 비애’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그레고르는 본인의 꿈보다는 오직 가족만을 위해 일했지만 내재된 고통과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벌레로 변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사람들은 책 속의 인물인 그레고르를 일방적인 ‘희생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무심한 ‘가해자’로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누어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조금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감정의 교류는 일방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의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도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에만 방치하다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책 속의 한 장면에서 그동안 그가 가족들과 했던 소통 방법들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레고르는 ‘늘상 여행을 하다 보니 집에서도 밤에도 문을 모두 꼭꼭 걸어 잠그는 조심성’(p13)이 있었다.


‘문을 모두 꼭꼭 걸어 잠근다는 것’은 조심성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동안 가족들과 소통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가족들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예민한 그레고르를 보며 속내를 잘 이야기할 수 없었고, 그저 고맙다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그저 가져다주는 돈으로 생활하며 말없는 그레고르가 자신의 생활을 좋아하겠거니 짐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가족들에게 ‘하숙인’처럼 조금은 낯선 이방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족들은 그레고르로 인해 모든 하숙생들이 나갔을 때 단절을 그렇게 쉽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어요. 아버지 어머니께서 혹시 알아차리지 못하셨대도 저는 알아차렸어요. 저는 이 괴물 앞에서 내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그냥 우리는 이것에서 벗어나도록 애써봐야 한다는 것만 말하겠어요. 우리는 이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사람으로 할 도리는 다해 봤어요. 그 누구도 우리를 눈곱만큼이라도 비난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p69)


 가족들과의 소통은 일방적인 희생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서로 추억을 공유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시간을 함께 보듬어야 한다. 그것이 가족인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 고압적이고 권적인 아버지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사과를 던져 그레고르를 다치게 만들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그레고르의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작가가 생전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겹쳐진다. 작가가 가족들과의 소통에서 고통을 겪었던 것처럼, 그레고르도 역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속내를 털어놓는 방법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변신>은 정말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은 사람들은 ‘벌레로 변한 한 남자’의 모습에 신기할 것이고, 두 번째 읽은 사람은 그레고르의 희생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세 번째 읽은 사람은 사람들의 소통, 실존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네 번째로 읽는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할까? 여러 번 읽을수록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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