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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Feb 03. 2022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태 켈러/돌베개)>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맞서는 법

 2022년 새해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두 번째 출발점이 지났다. 특히 올해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 노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의 기를 끊는다는 이유로 거의 사라져 버렸던 호랑이의 기운들이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조금씩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보다 앞서 2021년 뉴베리 수상자 태 켈러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라는 책으로 우리나라 호랑이의 기운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용맹하고 영험하면서 신령스러운 존재호랑이. 오늘은 2021년 미국 아동 청소년 문학계를 당당하게 호령한 릴리와 호랑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릴리의 가족이 병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 주로 이사하면서 시작된다. 릴리의 가족은 한국계 이민 가족이다. 릴리의 할머니는 지금까지 한국의 풍습을 유지한 탓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은인'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가족 중에서 '조아여(조용한 아시아 여자)'로 불릴 만큼 소심한 릴리는 할머니와의 가장 큰 애착 관계를 보인다. 릴리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한국 옛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어느 날 할머니의 이야기 속 주인공, 호랑이가 릴리 앞에 갑자기 나타난다. 마법의 호랑이는 옛날에 릴리의 할머니가 훔쳐 간 것을 돌려주면 그녀의 병을 낫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자꾸만 호랑이 이름을 반복적으로 되뇌며 불안에 떠는 할머니, 릴리는 두렵지만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 호랑이를 잡기 위한 덫을 설치한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에는 '고사', '쑥', '해님과 달님' 등 다양한 한국 풍습이 존재한다. 실제로 이 책을 쓴 작가, 태 켈러는 ‘태(TAE)’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이민 온 외할머니의 이름 ‘태임’에서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 그녀는 1998년 아메리카 북어워드 수상자 <종군위안부>의 작가 노라 옥자 켈러의 딸이다. ‘저자의 말’에서 태 켈러는 자신을 “4분의 1만 한국인”으로 자신의 피를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완전한 내가 되고 싶어서” 어릴 적 외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옛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 책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은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인 동시에 작가의 성장 이야기이다.


 주인공 릴리의 성장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릴리는 자신을 ‘투명 인간’이라고 정의하며 매사에 소극적이다. 릴리의 언니는 그녀를 ‘조아여’라고 부른다.


 “그냥 말해. 늘 그렇게 으스스하고 조용할 필요 없어. 넌 지금 딱 ‘조아여’야.”

 ‘조아여.’ 언니가 ‘조용한 아시아 여자애’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우리 같은 아시아계 여자애들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고정관념을 뜻하는 말. (중략)

  나는 언니에게 말한다. 그냥 도우려는 것뿐이야. 엄마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안 보여? 언니는 나한테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는다.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를 않는다. (p32)

 

 하지만 한번, 두 번 호랑이를 만나면 릴리는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소심했던 모습에서 자신의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는 소녀로 성장한다. 릴리는 점점 변해가는 말투와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성장을 증명한다.


 “이해를 못 하고 계세요. 이제 할머니 마지막 기회란 말이에요. 저 이거 해야 돼요. 할머니 나으셔야 해요.” (중략)

 “그렇게 그냥 포기하시면 안 되잖아요!

 “병에 맞서 싸우셔야죠! 강하게요! 그러셔야 하잖아요!”(p278-279)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에 나오는 호랑이 역시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에 등장한 호랑이의 모습은 이야기를 훔친 할머니를 ‘끝까지 잡으러’(p65) 오는 통제 불가능한 두려움의 존재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호랑이는 소심했던 릴리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돕는 존재로 변한다. ‘평생 호랑이를 무서워했던 할머니 역시 “때로 가장 강한 일은 도망을 그만 가는 거야”(p307)라고 말하며 더이상 회피하지 않고  초적인 자신의 두려움 받아들인다. 작가는 마음먹기에 따라 보이지 않은 두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평생 내 심장 숨기려고 너무 많이 시간 쓰고 힘썼어. 나 호랑이도 무서웠는데 내 속에 있는 호랑이 더 무서웠어. 내 말 숨겨야지 생각했어. 영어 잘 못 하니까, 그리고 내 마음도 숨겨야지 생각했어. 너무 많은 거 느끼니까. 그리고 내 이야기도 숨겨야지 생각했어. 말하면 나 영원히 그 이야기 같을까 봐.” (중략)

 “때로 가장 강한 일은 도망을 그만 가는 거야. 나는 호랑이만 무섭다, 나는 죽는 거 안 무섭다, 말하는 거야. (P306-307)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어색한 할머니의 번역체 말투다. 번역가는 한국 아이들이 사용하는 '할머니' 호칭을 그대로 번역하며 철저하게 한국의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앞서 인용된 할머니 말투에서 보듯이, 릴리 할머니의 어색한 번역 투는 종종 작품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그런데도, 이 책은 한국의 옛이야기와 국에 사는 한국계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신비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다. 한국의 이야기와 호랑이 설화가 그대로 녹아있는 매력적인 책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다.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 기운을 듬뿍 받아 마음의 성장을 꿈꾸고 싶은 초등 5학년 이상의 고학년, 어른들은 완독을 도전해 보시라. "어흥", 지금이라도 바로 호랑이가 액땜하러 달려올 테니. 올해는 이 책과 함께 호랑이의 기운을 마음껏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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