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Jan 16. 2022

신데렐라와 공정한 사회

 어릴 때부터 나의 동화 속 최애 주인공은 '신데렐라'였다. 그녀는 그 시절 자주 불렀던 동요처럼,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 속에서도 친절한 요정 할머니와 동고동락하던 동물들의 도움으로 왕자님과 꿈같은 결혼을 이룬 아름다운 재투성이 아가씨였다. 결혼 이후 신데렐라가 정말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을지, 아니고 시부모님의 또 다른 구박 속에서 지지리궁상의 결혼 생활로 눈물 지었을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꿈꾸고 좋아하는 동화 판타지는 항상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지어야 하니까 말이다. 동화에서는 핍박을 받는 많은 공주님들이 존재했지만, 신데렐라만큼 내 관심을 끄는 인물은 없었다. 가진 것 없이 평범한 소녀가 고난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쟁취하는 모습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였던 다른 공주들에 비해 멋져 보였다.


 어른이 되고 난 뒤 다시 만난 신데렐라는 백마 탄 왕자와의 결혼으로 행복해진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그녀는 종종 가난 속에서 부잣집 남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몽상적인 여성상을 대표하기도 했다. 여전히 신데렐라는 평범한 소녀들의 대체 불가능한 워너비 아이돌이었지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현대 여성상'을 뭉개는 원흉이기도 했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점점 많아지면서 '누군가의 결혼'은 더 이상 행복의 종착지가 아니었고,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그녀들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힘으로 행복과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여성, 남성 모두, 공정하고 평등한 출발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오늘날 '공정'의 화두는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배경, 능력, 성향이 다른 상황에서 모두가 똑같은 출발이 가능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대 사회는 현실과 판타지를 극단적으로 오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하려는 의지와 열정과 꿈이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긍정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많은 사람들은 ’성공신화‘를 꿈꾸며 밤낮으로 노력한다. 비록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 일터와 현실에서 허덕대고 있지만,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꿈이, 공부하고 있는 이 배움이 지금과는 다른 성공으로 이끌어 주리라 믿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배움을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한쪽에서는 매서울 정도로 ’현실직시‘를 요구하고 있다. ’재능과 돈과 여건‘이 안 된다면 성공하기 어려우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재촉한다. 어차피 공부 재능, 글 재능, 운동 재능은 따로 있고 할 수 있는 역량을 정해져 있다. 평범한 사람은 아무리 용을 써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없고,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 없다. 그저 본인 일을 하는 와중에 틈틈이 다른 일을 접한다는 흥미를 위해서라면 모를까, 새로운 세계에서의 성공은 꿈도 꾸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에는 개천은 너무 좁고 정보가 부족하다. 요즘은 용이 되기 위해서도 운, 돈, 정보가 한 박자가 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꿈과 열정‘만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사회일까? 아니면 ’저마다의 능력‘이 따로 있으니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는 더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는 곳일까? ’공정과 평등‘을 요구하며 우리는 시험을 치르고 사람들과 경쟁을 하지만 사실은 안다. 우리 출발선은 애초에 공정할 수 없고,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서 이 잔인한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좋아했던 신데렐라도 사실은 ’부유한 귀족‘이었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모‘로 왕자님을 꼬신 것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소녀들이 애초에 갖지 못했던 매력들로 본인의 행복을 쟁취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판타지 세상이 아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현실 속의 비극과 희극의 갈림길 속에서 사람들은 발버둥 치고 있다. 잔인한 현실과 사람들의 판타지 난무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꿈을 유지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매거진의 이전글 폭설을 뚫는 최고의 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