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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Feb 10. 2022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응원가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1,500m 쇼트트랙에서 황대헌 선수가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쳐 금메달을 차지했다. 전에 있었던 1,000m 준결승에서의 편파 판정을 딛고 이룬 승리라 더 값어치가 있다. 온 언론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올림픽 승리지’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떠올린다. ‘아, 결승전에 올랐던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되었더라?’ 분명히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기억하고 응원했던 선수들인데, 황대헌 선수의 금메달 획득의 기쁨에 휩싸여 메달권에서 벗어난 선수들의 행방을 잠깐 까먹어 버렸다. 매번 경기전에 메달을 따지 못해도 열심히 한 선수들을 응원하자고 다짐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에게 더 눈이 간다.

 

 어느 순간 내 눈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에게 더 고정되어 있다. 좀 더 유명하고, 좀 더 돈을 잘 벌고, 좀 더 지위가 있는 사람들. 항상 나이 드신 분들이 자기 소개할 때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라며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먼저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속 편하게 듣지 못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내 눈과 마음은 화려한 외면과 명성을 먼저 좇고 있다. 대학을 입학한 사람들을 봐도 ‘SKY’ 간판이 먼저 눈에 보이고, 큰 애 학원을 알아봐도 몇 명을 1등급으로 만들었는지를 먼저 살펴보게 된다. 유튜브에서도 구독자가 몇 명인지, 어떤 콘텐츠가 더 주목받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게 된다. 유튜브와 다른 SNS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라며 한때 ‘보통 사람들의 반란’이라고 불렸지만, 유명 크리에이터들이나 지명도가 높은 연예인들이 가세하면서 그 의미는 사라져 버렸다. 그 이면에는 항상 평범한 사람들보다 유명하고 스타성이 있는 연예인 보기를 더 좋아하는 내 ‘눈’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렇게 화려하고 즐거운 것을 보고, 잘나고 멋진 사람들에게 박수만을 보내고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쉽게도 사람의 본성이 그렇지 않다. 역사상 사람들 사이에는 ‘높고 낮음’이 없음을 증명하는 공식적인 제도 ‘신분제’가 서양에서는 ‘프랑스혁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갑오개혁’을 거치며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내면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비교하고 우열을 만들며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렇게 남들만을 위해 마냥 손뼉만 치기에는 우리의 본성이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우리는 남들에게 존중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유명하지만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학벌이 좋지 않아도 사람들은 존중받고 싶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분쟁들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도 이익 다툼도 있겠지만, 인간적으로 존중을 받지 못했다는 오해가 가장 클 것이다. 사람들을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암묵적으로 줄 세우는 행위는 옳지 않다. 이 행위는 무조건 고쳐야 할 마음가짐이다.


 새롭게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1등’만을 위하는 내 생각을 바꾸면 될 텐데 그것도 쉽지 않다. 여전히 대중매체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살피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대학도 필요 없고, 좋은 성적도 필요 없다며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그것도 삶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배경이 잘 갖추어졌을 때나 가능하다. 소시민인 나 같은 사람들이 그나마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은 과거나 지금이나 ‘돈’이요, ‘교육’이다. 누구도 나와 내 가족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절박함이 사람들을 성공을 위한 ‘악바리’로 만든다. 그 성공이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만의 성공만을 추구한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경력 단절이 생기고 나니 더 이상 예전 경력을 쌓아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을 맡길 사람이 없어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몇 년 뒤, 자격증을 따고 새롭게 나간 세상은 냉혹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아웅다웅 보낸 세월은 ‘백수’로 취급되었고, 내가 가질 수 있는 일거리는 매년 새롭게 계약해야 하는 ‘프리랜서’ 일이었다. 그것도 기약이 없는. 그런 날 보며 누군가는 그랬다. 밖에 나가서 일하면 얼마나 버냐고. 괜히 몇 푼 번다고 고생하지 말고 집에서 애나 잘 키우라고.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그분에게 돈은 사람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난 계속 머리를 꼿꼿 세우고 그분이 생각하는 ‘하찮은 일’과 봉사를 계속 이어나가며 내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유명하지도 않고, 돈도 없고, 지극히 평범하지만, 끊임없이 내 일을 이어나가고 고민하는 것, 그것은 내 삶이다. 어쩌면 이런 행동 다른 곳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자존심을 굽히고 있을 남편 덕분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편이 주된 생활비를 벌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내가 이런 자존심이라도 부릴 수 있는 거겠지. 가끔은 유명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만이 아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응원가도 좀 듣고 싶다. 평범하고 돈이 없어도 자존심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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