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Feb 20. 2022

임포스터, 내 안의 가면 벗는 사회

진짜 어른되기의 첫걸음

 나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뭔가를 시작할 때마다 익숙한 일이 아니면 도전이 무서웠다.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네, 하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시작하기보다는 먼저 시작한 다른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따라가기를 원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내 모습이 ‘원래 난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어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JTBC 프로그램 ‘차이 나는 클래스-(가면을 벗어라, 메타인지 학습법 편)’를 보고 난 후, 이런 내 생각이 바뀌었다. 캘리포니아 대학 리사 손 교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경향을, ‘임포스터, 가면 쓰기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임포스터(가면 쓰기 현상)’은 자신이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해 자신이 주변을 속이며 산다고 믿는 불안심리 현상이다. 리사 손 교수는 전 인구의 70% 정도가 이 ‘임포스터’ 현상을 겪고 있고, 대표적인 가면으로 노력을 숨기고 천재인 척하는 ‘천재 가면’, 완벽한 척하는 ‘완벽 가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겸손 가면’이 바로 그것이라 설명했다.


 임포스터의 첫 번째 가면, ‘천재 가면’은 노력을 숨기고 천재인 척하는 가면이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친구들 앞에서는 늘 “어제 노느라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라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냥 내 노력을 친구들이 아는 것이 싫었고, 혹 노력에 비해 시험 결과가 안 올까 봐 항상 두려웠다. 리사 손 교수는 이런 나와 같은 사람들의 심리를 노력에 비해 그 성과가 잘 안 나올 경우를 생각해서 미리 방어막을 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노력형 바보’보다는 ‘게으른 천재’라고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하기에 자신의 노력을 감추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가면은 완벽한 척하는 ‘완벽 가면’이다. 흔히 첫 출근, 첫 수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인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인데도 완벽한 사람인 양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그 예시로 교수는 자신의 첫 교수 출근 경험을 들었다. 처음 교수로 임용이 된 그녀는 처음부터 새내기가 아니라 ‘완벽한 교수’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완벽한 정장과 구두를 챙겨 입었지만, 다른 동료 교수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을 이용해서 교실로 이동했던 경험을 고백했다. 나 역시도 매년 첫 수업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혹은 첫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항상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런 내 불안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것은 더 무서웠다. 그래서 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관리를 하며 내 완벽 가면 뒤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 노력을 사람들 앞에서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유지한 채 물 밑으로는 열심히 자맥질을 해 댔다. 새롭게 일을 할 때면 매번 밤을 새우고 노력을 했지만, 왠지 그 노력을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세 번째 가면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겸손 가면’이다. 요즘 잘 쓰고 있는 가면 중의 하나이다. 내가 어떤 좋은 성과, 혹은 상을 받았을 때도, 아이들이 상을 받고,  성적을 올렸을 때도 항상 이 가면을 쓰고 “운이 좋았어요” 혹은 “아니에요. 다른 것은 잘 못해요.”라고 말했다. 특별히 깊게 생각을 하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고, 괜히 이런 좋은 성과를 인정하면 오만하게 보일 까 봐 겁났다. 사실은 좋은 결과를 만들기까지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 노력을 일일이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겸손 가면을 쓰고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계속 숨기고 감췄다.


 지금까지 쓰고 있는 내 가면들, 아직도 벗지 못하는 내 가면들이다. 이 가면들 뒤에는 항상 걱정이 많고 불안한 내 모습이 숨어있다. 매번 이 가면들을 벗고 싶지만, 이 가면들을 벗어도 좋을지 잘 모르겠다. 리사 손 교수는 이런 가면들을 벗기 위해서는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메타인지’를 깨닫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객관적으로 안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대한 예시로 ‘개구리’와 ‘올챙이’를 들었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방송으로 꼭 확인했으면 좋겠다.


 이 방송을 보는 내내 마음이 슬펐다. 요즘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화두는 ‘진짜 어른 되기’였다. 나이가 20살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어른 취급을 받고 수많은 첫 번째 일들을 경험했다. ‘어른이라면’라는 전제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고, 집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장례식을 갔다. 이 많은 일들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해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었고 경험들이었다. 사회에서는 완벽한 ‘결과’와 당연한 ‘눈치’를 요구했다. 난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어른’이라는 딱지를 단 이후부터는 무지는 곧 수치로 취급받았다. 주변 어르신들의 성향에 따라 ‘아직 어린 너희가 무엇을 아니?’라며 의견들은 무시당할 때도 있었고, ‘이제 어른이니 알아서 해라’라며 홀로 선택의 길목에 내몰리기도 했다.


 내가 쓰고 있는 수많은 가면들은 사실, ‘완벽함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나를 보고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한두 가지의 가면으로도 내 자신을 잘 보호할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는 더 많은 가면들이 필요했다. 잘 모르지만, 어른이라 아이들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더 완벽해야 했고, 더 겸손해야 했다. 나는 희망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거짓 가면들을 다 벗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기를, 지금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잘 모르고 서툴러도 함께 성장해 가자면 감싸줄 수 있기를, 나 역시도 내 얕은 경험과 지식으로 다른 어린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고 잘 경청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응원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