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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28. 2022

폭설을 뚫는 최고의 음식

 어제 무심코 클릭한 ‘네이버 기사 헤드라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2022년 1월 27일 자 조선일보 기사로 <55㎝ 폭설 뚫고 온 식당 문 닫아 ‘털썩’… “이 손님 애타게 찾아요”>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이 영상은 식당 측에서 보안용으로 달아놓은 CCTV에서 찍힌 기록이다.

기사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해당 영상에서 손님은 자신의 무릎 위치 정도의 높이까지 쌓인 눈을 푹푹 밟으며 식당 출입구 쪽으로 걸어온다. 그러나 식당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그는 실망하고 주저앉고 만다. 잠시 그대로 멈춰있던 그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나 하의에 묻은 눈을 털고 다시 눈을 밟으며 돌아간다. 이후 이 영상은 조회 수 6만 3700회 이상을 기록하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출처: 2022년 1월 27일 자 조선일보)


 55cm 폭설을 헤치고 온 그 남자가 원한 음식은 과연 무엇일까? 이 신비로우면서 애처로운 남자의 모습은 많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지, 왜 이 폭설을 헤치고 식당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왔는지, 무척 궁금하다. 적힌 기사 내용과 영상을 바탕으로 나의 ‘탐정’의 촉을 발휘해 본다.


  우선 그 남자가 먹고 싶었을 음식! 영상을 올린 식당이 어떤 종류의 식당인지는 이 기사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식당의 주 메뉴가 은근한 캐나다 전통 음식일지, 재빨리 서빙되는 미국 패스트푸드 일지, 아니면 향신료가 가득 든 얼큰한 중국 음식일지 다양한 상상이 떠오른다. 그 남자가 추운 날씨에 점점 굳어가는 몸을 이끌고 먹고 싶을 만한 음식은 뭐가 있을까? 만일 나라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었을까?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음식은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종류이다. 하나 둘 낙엽이 떨어지고 추위가 성큼 다가온 날씨에는 따뜻한 국물처럼 유혹적인 음식은 없다. 추위로 곱은 손을 애써 펴 가며 뜨끈한 국물 한 사발 들이키면 세상만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서러웠던 기분이 모두 사라진다.

 아니, 어쩌면 이 남자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뽐내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그는 ‘이한치한’이라며 차갑고 달콤한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그동안의 울화를, 모든 분노를 차가운 기운으로 상쇄시키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 남자가 이 폭설을 헤치고 식당에 온 이유가 요리가 아니라면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이 사람의 인간관계로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첫 번째는, 그 남자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움직였을 가능성이다. 그는 아픈 어머니를 위해, 혹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식당을 방문했을 수 있다. 그 남자는 책임감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폭설에도 사랑하는 이가 절실히 원하는 음식을 무조건 구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영상 속에서 식당 문이 닫힌 것을 발견하고 그 남자가 ‘털썩’ 주저앉는 모습은 절망감마저 느껴진다.


 두 번째는, 그 남자가 요리가 하기 싫어 그냥 들렀을 경우이다. 물론 이 경우는 이 식당의 요리가 특별히 맛있고 그 남자가 정말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있다. 그런  전제 조건 없이, 55cm가 넘는 하얀 폭설을 헤치고 식당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하긴 그 남자는 이미 불가능한 가설을 뛰어넘어 가능한 사실로 만들었으니 또 다른 추측도 가능할 것 같다.


 많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 기사의 마지막에는 식당 주인의 애타는 호소가 담겼다.


수 일째 이 손님을 찾고 있다. 이 손님이 이런 날씨에 우리 가게에 와서 먹고 싶어 했던 메뉴가 뭐였는지 궁금하다”


 55cm 폭설이 내린 극한 날씨 속에 방문한 이 식당에서 그 남자는 무엇을 먹고 싶었던 걸까? 70만 년 이전부터 온 인류는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매끼마다 반복적으로 구강구조 움직였다. 지금처럼 음식을 골라 먹으며 선택할 수 있는 시기는 긴 역사의 흐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순간이다. 예전에는 몇몇 부유한 계급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살기 위해 먹었다. 너무도 힘들고 극한 상황 속에서 내가 정말 먹고 싶은 최고의 음식이 무엇일지 떠 올려 본다. 떡볶이?, 김치찌개?, 앙버터? 그동안 내 몸을 살찌우고 나태하게 만들었던 많은 음식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직은 극한 상황에서 무엇을 먹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 만일 그런 순간이 나에게 닿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즐겁게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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