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웹소설을 봐요.

by 하늘진주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든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어떻게 풀까? 시대가 흐를수록,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들을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거의 비슷했다. 방안 가득 시끄러운 헤비메탈 음악을 털어놓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열심히 흔들어 내거나 노래방에 가서 크게 노래를 불렀다. 혹은 산으로 강으로 우아하게 자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흘러 보내거나 분노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필체로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갔다. 또는 노란색 맥주병, 혹은 초록 색 소주병 하나와 취향에 맞는 안주를 차려 둔 채 한 잔, 두 잔 ‘분노 유발’하는 원인들을 떠올리며 열심히 씹어 댔다.

요즘은 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본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21세기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두뇌와 시간과 노력을 더 쓰고 있다. 어떨 때는 그런 행동들이 또 다른 스트레스를 키우기도 한다.


나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우선 카카오 페이지를 열어 웹소설을 본다. 주로 로맨틱 판타지 소설들을 클릭하며 시간을 보낸다.

‘죽었다가 새로 인생 시작’, ‘전생의 삶은 버리고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빙의’, ‘다시 시간 돌리기’ 등등 이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내용들을 몇 시간이고 읽고 있으면 어느새 기존의 스트레스를 멀리 달아나고 새로운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아, 오늘도 이렇게 시간을 허비했구나.’


솔직히 이 허무맹랑한 내용을 보고 있는 것은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웹소설 보기는 나에게 ‘거북목’과 ‘목디스크’라는 불치병을 안겨주고, ‘침침한 눈’과 더불어 ‘노안’으로 향하는 하이패스를 끊게 해 줄 뿐이다. 그뿐인가? 처음 ‘무료 100원, 200원’으로 시작하는 카카오 회사의 유혹의 낚시질들은 결국 열심히 일하며 벌었던 피땀 같은 내 통장의 돈들을 한 순간에 날린다. 이런 행동을 생각하면, 매일 아이들에게 부르짖는 “게임을 하지 마라”, “너 할 일은 하고 놀아야지.”, “절대로 유료로 게임을 하면 안 된다” 와 같은 잔소리들이 부끄러울 뿐이다.


가팔랐던 분노와 스트레스의 지수가 서서히 가라앉으면, ‘카카오 페이지’ 속의 웹소설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그럴 때는 굳은 표정과 마음으로 핸드폰 애플리케이션 설정에 들어가 ‘카카오 페이지’를 과감히 삭제한다. ‘다시는 이 생에서 보지 말자’ 굳게 다짐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핸드폰 기능에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삭제하는 기능에 제한이 있다면 아마 내 핸드폰은 예전에 고장이 났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로서는 ‘카카오 페이지’를 쉽게 끊을 수가 없다. 읽어야 할 책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은데도 말이다. 솔직히 웹소설은 문체를 꼼꼼히 공부하고 살펴봐야 할 만큼 문학성도 뛰어나지 않고 구성도 특별하지 않다. 매번 비슷한 유형, 상황, 환경의 반복이다. 그런데도,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판타지 웹소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까닭은 장르문학만이 가진 독특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시공간을 오가는 허무맹랑한 ‘초월성’이요, 두 번째는 지질한 인물로 새롭게 주인공으로 변화시키는 ‘영웅 신화’이다.


판타지 웹소설이 지닌 ‘초월성’은 직장, 학교, 집, 시내 등 제한된 공간을 오가며 찌들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쾌감을 준다. 영화 ‘어벤저스’의 엔드게임에서도 다른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과학적인 무수한 실험들이 뒷받침되었다. 이 웹소설에서는 그런 과학적인 논리와 반복적인 실험 따위는 아주 우습게 무시된다. 그냥 장면 변화와 함께, ‘교통사고 당했다가 일어나 보니 다른 차원의 인물이었다.’,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작가의 마음대로 게임 속의 인물로 빙의되기도 하다가 중세로, 무림의 한 고수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독자는 구체적인 이론이나 논리를 알 필요가 없다. “이게 가능해?”, “이게 최선이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만 받던 현실 세계에 살던 독자들은 “그냥 이거야”라고 밀어붙이는 가상 세계를 접하며 엄청난 가능성과 희열을 느낀다. 가끔은 아무런 의심과 두려움 없이 삶을 살아보고 싶다.


두 번째는 웹소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웅 신화’이다. 영웅들이야 다른 기존 소설에서도, ‘신화’에서도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부터 훌륭한 배경의 소유자였고, 혹은 태어날 때부터 대단한 DNA의 소유자였다. ‘해리포터’조차도 훌륭한 마법사 부모를 가지고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웹소설에서는 철저히 초라하고 평범한 엑스트라가 주인공이라고 설정한다. 눈에 띄지 않은 인물이 ‘기연’으로, ‘타임 슬립’으로 알고 있는 사실, 기억들을 이용하여 이야기 서사를 이끌어 간다. 너무 삶이 힘겹고 어려울 때, ‘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라며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웹소설은 평범한 사람들의 불가능한 꿈을 아주 쉽게 이루어주고 있다.


웹소설의 내용들은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고 오직 사이버 상의 글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세상사 어렵고 힘겨운 기사들을 접할 마다, 삶이 어려울 때마다 다시금 ‘카카오 페이지’를 깔고 지우는 일을 반복한다. 힘들 때마다 엉뚱하고 희한하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들이 자꾸만 나를 위로한다. ‘웬수 같은 카카오페이지’, 아마 이 어플과 이별하는 날은 아마도 내가 행복에 젖어 더 이상 판타지의 위로가 필요 없는 날일 것이다. 그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이 어플을 지우리라. 또다시 다짐해 본다.


(원고지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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