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성의 판단'보다는 '감성의 논리'가 더 우선시되어야 할 때가 있나 보다. 분명 이성으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주변의 분위기에 의해서, 앞으로의 변화 때문에 "예"라고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다. 요즘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작년 기숙사 고등학교를 진학한 큰 애, 고1 첫 해를 무사히 잘 보내고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이 학교는 대입에 진심인 학교라 겨울방학에도 방학 스케줄이 무척 빡빡해 보였다. 그럴수록 큰 애가 조금씩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 아이를 보며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만 더 힘내라는 말과 먹고 싶은 것을 챙겨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애는 크게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분위기 전환을 할 겸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서 친구들과 놀러 가기로 했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2가지였다. 요즘 계속 증가하는 오미크론 확산세를 생각하며 혹 생길지 모를 코로나 확진 가능성과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만 놀러 갔을 때 생길지 모를 불상사였다. 그래서 내 생각과 걱정을 바로 내비치며 안된다고 말했다.
큰 애는 처음에는 자기도 다 컸다며 그리고 다 잘할 수 있다며 나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단호한 엄마 반응에 결국 포기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불안을 너무 부풀려서 생각한다며 서운해했다.
어쩌면 내가 요즘 시대와 맞지 않게, 혹은 남편 표현에 의하면 '너무 아들들을 치마폭에 감싸고 키우려'는 지도 모른다. 큰 애는 자신을 믿지 않고, 엄마의 걱정 때문에 친구들과의 추억여행을 참여 못한다며 온종일 부루퉁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미래를 걱정하고 일어날지 모를 가능성을 앞서서 생각하는 것이 큰 잘못일까?
남편은 "남자 애들은 작은 추억 하나라도 잘 공유하지 않으면 나중에 좋은 관계 형성이 힘들다"며 웬만하면 '아들친구들의 추억여행'에 보내자는 입장이었다.
남자 애들과 여자 애들은 다른 입장인가? 학창 시절 난 이런저런 사회의 제약과 부모님의 간섭을 받느라 하고 싶었던 일은 거의 해 보지 못하고 컸다. 그때 주로 들었던 이유는 세상이 너무 무섭고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거였다. 똑같은 이유를 아들에게는 적용하면 안 되는 걸까? 딸은 친구들과의 추억을 공유하지 않아도 괜찮고 아들은 추억을 공유해야 교우관계가 잘 유지된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삐딱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데로 해라"라고 말했다. 아들의 시무룩한 표정도 더 이상 보기 힘겨웠고, 남편이 자꾸 이야기하는 '남자아이들은 이래야 한다'는 말은 이미 여자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아이들끼리 멤버 선정이며 회비 수거까지 다 끝났다며 너무 늦은 엄마의 결정에 시무룩한 반응을 보였다.
이성으로는 자꾸만 안된다며 판사 봉이 정신없이 휘둘러지는데, 감정으로는 "그래도.." 라며 판사봉을 엉거주춤 붙들고 있다. 내가 여자여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보수적이어서 그런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