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25일은 항상 그립고 보고 싶고 가까이하고픈 임과 이별하는 날이다. 이 임은 너무 도도하고 매정해서 매달 25일 새벽에 살짝 발자국만 남겼다가 아침 해가 뜨기가 무섭게 자리를 뜬다. 항상 그랬다. 임을 안 지 몇십 년이 지났건만 한 번도 미적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매사 정확하고 단호한 모습,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갖고 싶은 임이다. 가끔은 매정한 임도 부드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가끔 이별일 25일이 주말이나 연휴가 겹칠 때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바쁜 걸음을 멈춘 채 얼굴을 더 보여준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떠나지 않는 임의 얼굴을 보며 나는 얼마나 행복해했던가? 임은 이런 밀고 당기기로 내 마음을 몇십 년째 꼭 붙든 채 도통 놓아주지 않는다. 차라리 미워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너무 매력적이어서 도저히 멀리할 수 없는 무정한 임이다.
나는 임 그 자체의 모습으로 사랑한다. 임을 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요즘 사람들은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임이 다른 사람의 눈치 보느라 체형 바꾸기를 원하지 않는다. 갑자기 임이 뚱뚱해지고 살이 쪄도 내 사랑은 절대로 변치 않으리라. 임의 얼굴이 두툼해질수록, 임의 몸집이 점점 커질수록 나는 나날이 더 사랑에 빠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진정한 ‘찐 사랑’일까. 난 오히려 임이 가끔 외부의 압력 때문에 얼굴이 홀쭉해지고 체격이 조금씩 쪼그라들었을 때 무척 화가 났다. 왜 우리 임이 정부의 ‘세금 갈퀴질’로 마음고생을 하며 먹성을 줄여야 하는가. 나는 임이 항상 ‘행복한 돼지’처럼 마음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임이 아무리 커져도, 아무리 뚱뚱해져도 나는 전혀 상관없다. 임의 몸집이 지금보다 두 배, 세 배 더 커진다 해도 다 감당할 수 있다.
가끔은 임이 밉다. 그는 정말 끝도 없는 한숨을 선물하는 잔인한 연인이다. 매달 25일, 손수건 한 장, 티끌 없이 임이 떠나간 빈자리는 공허하기만 하다. 특히 임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낸 후 다음 달은 더 힘겹기만 하다. 작년 연말, 임은 갑작스러운 보너스와 함께 방문했을 때 너무나 행복했다. 연말 분위기에 젖어 흥청망청 열심히 음식들을 시켜 먹고, 사 입으며 임과 들뜬 연말을 보냈다. 그리고 한 달 후, 오늘, 이번 달도 역시 임은 저번 달의 즐거운 기억은 나 몰라라 한 채 텅 빈 통장만 남긴 채 훌훌 떠나 버렸다. 몇 분만 아니 하루만 더 있다 떠나시지 그냥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 버렸다. 이번 달은 임 없이 어떻게 지내라고 그렇게 무정하게 떠나실까. 사랑하지만 너무나 얄미운 임이여!
이제 다시 임을 만나려면 다시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질척이는 내 사랑의 마음, 임은 아실까? 다음 달은 임을 붙들고 오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임과의 만날 날은 아직 멀기만 한데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은 많기만 하다. 사춘기 아들 둘과 남편의 배고픔 그리고 아이들 학원에서 달마다 요구하는 배움의 비용들은 ‘무저갱’처럼 제한이 없다. 이번 달 허리띠를 조금 더 졸라매고 소비를 원하는 마음에 빗장을 채운 채 기다리면 임과의 시간은 더 길어질까?
“아아, 사랑하는 임이여, 매달 25일이면 가차 없이 떠나는 매정한 임이여, 임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임은 갔습니다. 먼지만 날리는 임의 빈 자취를 바라보며 풀만 뜯으며 임을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달 25일에는 좀 더, 가까이에서 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달 25일은 사랑하는 임과 이별하는 날, 오늘 하루 조신하게 초라한 내 지갑을 붙든 채 멀리 간 임의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