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생활 속 이야기 만들기

by 하늘진주

요 며칠간 계속 눈이 내린 탓인지 밖은 하얀 눈으로 가득하다. 처음 눈이 내릴 때는 폭신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도 가득 쌓여 있는 함박눈을 본 것이 얼마 만인가. 뒤이어 스멀스멀 경험 속에 잠재된 생각들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차를 몰고 나갈 것이며 주차할 걱정, 혹시 미끄러져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이다. 아직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걱정거리들이지만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연결이 된다. 눈 온 지 며칠이 되었지만 난 아직 눈 위를 걸어보지 못했다. 집안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이미 차들이 굴러간 까만 바퀴 자국과 곳곳에 나 있는 사람들의 발자국들로 어지럽다. 함박눈 속에서도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구정을 쇠고 멀리 있는 시골에 다녀온 이후, 피곤을 핑계 삼아 밖을 나가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들이 정성껏 싸 주신 명절 음식들을 ‘생존 음식’ 삼아 조금씩 데워 먹으며 온종일 TV와 인터넷만 들락거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명절 살이, 곳곳에 일어난 사건 사고들, 예능들, 내 머릿속에 내가 아닌 다른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꾸역꾸역 채워 넣으면서 말이다. 신기한 일이다. 난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불태우게 된 것일까? 그 사람들이 명절을 어떻게 지내든지, 돈을 얼마를 쓰던 지,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 제목만 따라서 여기저기 떠돌다 보며 가끔은 허무하다. 아,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황금 같은 쉬는 날,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읽고서 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처음의 시작은 지루함, 무료함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사람들과 만나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몸단장하지 않고 편하게 사람들의 세상사를 살펴보고 ‘이러쿵저러쿵’ 혼잣말할 수 있는 것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재미있는 유희 거리였다. 다시 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냥 읽기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가. 손바닥만 한 인터넷 세상으로 모든 세상이 연결되어 있으니 ‘클릭 하나’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기는 너무나 쉬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뭔가를 모른다는 것이 불안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정보들이 넘쳐나는 세상,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알 수 없다. 서로 연결되는 세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최소한의 정보들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파고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받는 할인을 못 받았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정보들은 나만 몰라서 손해를 봤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인터넷 소식, 이야기들에 목매게 된다. 정보 없이 움직이기에는 불안하고 ‘호갱’이 되지 않으려는 나만의 몸부림이다. 요즘 세상은 나처럼 느리고 정보가 어두운 사람들을 바쁘게 만든다. 내 이야기를 만들 시간이 없이 말이다.


주변 가득 쌓인 함박눈을 보자마자 남편은 ‘오리 틀’을 사러 가자며 난리다. 남편은 귀경길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며 쌓였던 짜증들은 모두 잊은 양 몇 번을 밖으로 맴돌았다. 그동안의 피로들은 눈과 함께 사라진 모양이다. 한참을 그렇게 맴돌더니 시무룩해서 다시 들어온다. ‘오리 100개’를 처음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만들어 놓았단다. 아까 읽은 기사에도 몇몇 유명한 연예인들이 오리 틀로 만든 오리들로 집 주변을 채워놓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우리 집 주변의 많은 사람도 발 빠르게 눈으로 오리를 만들었나 보다. 다른 유명한 누군가가 만드는 오리와 자신이 만드는 오리는 좀 다를 것이다. 같이 이야기 나누고 주고받는 경험들이 다를 테니 말이다. 내가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사이에도 이미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나중에 읽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체험하며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오늘은 내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읽으면서 말이다. 이제 나도 생활 속에서 경험하며 내 이야기를 만들어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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