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입춘첩'을 붙이는 시간

by 하늘진주


1분, 2분, 3분

졸린 눈을 비비며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핸드폰 시간만 쳐다보며 서 있다. 2022년 2월 4일 새벽, 5시 45분이 갓 넘은 시간, 오른손에는 딱풀을, 왼손에는 하얀색 한지 한 장을 들고서 말이다. 그 종이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건양다경(建陽多慶·새해가 돌아왔으니 경사가 많으리라)’이라는 의미의 한자가 멋들어지게 쓰여 있다. 조선 시대로 돌아간 아녀자의 마음으로 초조하게 ‘입춘첩’을 붙이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2월 4일은 절기상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다. 우리 조상들은 입춘을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절기라고 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원래 사시사철의 절기를 잘 살피고 챙기는 편이 아니지만, 올해는 본의 아니게 입춘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이번 구정, 시부모님 댁에 들렀다가 ‘입춘첩’을 하나 얻어 왔기 때문이다. ‘입춘첩’은 가정에 행운과 건강을 가져다주고 액운을 막아준다는 의미로, 좋은 글귀를 세로로 쓴 종이다. 흔히 종가댁이나 한국민속촌의 대문에 ‘八’ 자 모양으로 큰 글씨로 붙여져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솔직히 ‘입춘첩’을 어머님께 부탁할 때는 그냥 가벼운 마음이었다. 시댁을 방문할 때마다 붙여져 있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글자가 신기했고, 올해는 우리 집 현관에도 붙여보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런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입춘첩’을 받아 왔고 ‘시간이 날 때 붙여야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입춘첩’을 붙이는 시간이 따로 있을 줄이야.


시댁을 다녀오고 난 뒤,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며 설 연휴를 보내던 오후, 어머님께 문자가 하나 왔다. 낯선 시간, ‘2022년 2월 4일 새벽 5시 51분’이 적힌 글자와 함께 말이다. 어머님은 바로 그 시간이 바로 올해 ‘입춘첩’을 붙이는 시간이니, 꼭 그 시간에 맞추어 현관문에 붙이라고 당부하셨다. 오후 5시도 아니고 새벽 5시 51분, 솔직히 ‘망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겨울이 되고 부쩍 날씨가 쌀쌀해지고 난 뒤, 새벽 5시 기상이 너무 어려워졌다. 이불속은 너무 따뜻하고 겨울밤이 까맣게 짙어지니 새벽 5시에 맞추었던 기상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겨우 나름 나랑 합의한 시간이 새벽 6시 5분, 딱 새벽에 진행하는 전화영어 수업을 받기 직전이다. 어떨 때는 그마저도 그냥 잠들어 버려 매번 새벽 6시 10분, 필리핀 강사의 전화벨을 알람 삼아 일어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그런 내가 올해 입춘 시간, 5시 51분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어제는 미처 하지 못했던 숙제를 하느라 새벽 1시 반을 훌쩍 넘어 잠들었다.


우선은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잠들기 전, 핸드폰 알람을 2중, 3중으로 울리게 설정해 두었다. 새벽 5시 30분, 5시 40분, 5시 45분, 그래도 아직 마음속에 ‘입춘첩’을 정시에 붙이겠다는 의지는 남아 있었는지 무사히 일어났고 제시간에 붙였다. 하지만 솔직히 왜 입춘 시간을 꼭 맞추어 붙여야 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사실 결혼 이후, ‘입춘첩’을 붙이는 일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면서 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남편의 생일과 아이들의 생일 아침때마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3가지 나물과 붉은 팥밥, 미역국, 그리고 깨끗한 물이 있는 ‘조왕신’을 위한 밥상을 준비하는 일이다. 사실 이 일은 결혼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도 않았고 친정에서도 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한 첫 해, 어머님은 꼭 남편과 아이들 생일 아침마다 ‘조왕신’을 위한 밥상을 정성껏 준비해서 안방에 둔 뒤 가족들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 생일 때는 친정어머니께서 해 주실 테니 굳이 할 필요가 없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 말씀이 무척 서운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처음 ‘조왕상’을 차릴 때 요리가 서툴러 시금치나물 1가지를 하는 데도 30분 이상이 걸렸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내 생일을 따로 안 챙기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


결혼 전에는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으면 하지 않은 일이 많았다. 분석하고 비판하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결혼 이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잘 몰라도 우선은 하고 본다. 그게 미신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가족에게 좋다니까’,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니까’, 그저 그 마음뿐이다. 이제는 그것이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아니라 가족에게 좋고 나쁜지를 먼저 따지게 되었다. ‘입춘첩’을 정시에 맞춰 붙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잠을 많이 못 자서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이걸로 가족들에게 행운과 좋은 일이 가득 생긴다면 다 괜찮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만 알고 이기적이었던 내가 점점 변해간다. 그렇지만 여전히 왜 ‘입춘첩’을 시간에 맞춰 붙여야 하는지는 궁금하다. 일단 조상님의 뜻을 따르기는 하지만 자꾸 솟구치는 호기심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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