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지네와 트라우마

비슷한 상황이 조금만 느껴져도 몸이 먼저 반응하곤 한다.

by 박태철


트라우마는 정신적 외상 충격을 가리키며,

강한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어 마음에 남는 깊은 상처를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트라우마에 빠질 때가 많다. 인생의 지난 시간 속에서 생긴 흠집과 상처가 마음에 깊이 패여, 비슷한 상황이 조금만 느껴져도 몸이 먼저 반응하곤 한다.

우리 집은 옆에 산이 있고 집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곤충이 자주 보인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부엌 싱크대에서, 한약방에서나 볼 법한 크기의 빨강지네가 두 번이나 나왔다.


실내화로 몇 번을 세게 내려쳐도 죽지 않고 몸만 작아져서, 결국 휴지로 빨리 잡아 변기에 버렸다.

그 후 전문 방역 업체를 불러 집 안 구석구석을 방역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새벽에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갈 때면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난다.

나는 벌레를 정말 싫어한다.

하물며 빨강지네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살면서 트라우마를 겪고, 또 이겨내며 살아간다. 살아보니 트라우마는 ‘정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뭐 별거 있겠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쇠사슬처럼 묶여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빨강지네가 또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
나오면 잡으면 되고, 못 잡으면 방역 업체를 부르면 된다.

앞으로도 많은 트라우마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 쇠사슬에 묶이고 싶지 않다.

깊어가는 가을의 일출은 오늘도 새로운 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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