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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Nov 03. 2020

불확실성을 대하는 조직문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관하여

  


   2006년부터 피해가 보고되어 2018년 1월 기준 피해자는 5,960명, 사망자는 1,296명에 달하는 사고가 있다. 2020년 현재 사망자 수는 1559명으로 증가했고, 2021년에는 더 이상 이 숫자가 늘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게 되는 참사가 있다. 2011년 역학조사에 착수했으나 2016년에야 형사 재판이 시작된, 가습기 살균제 참사이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일마저 어렵게 한 걸까? 관련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언론과 대중은 정부나 기업의 부도덕함과 무능함을 연일 지적해왔다.



      그러나 저자가 논문을 통해 강조하듯, 재난의 원인이 밝혀진 뒤에 '이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한' 정부와 기업을 비난하는 것은 재난이 발생한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물론 그들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한 구석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인과관계가 선명하게 가시화된 원인이, 재난의 발생 전에는 수용 가능한 불확실성에 머무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어떻게 변모하여 사회에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또 다른 사회적 참사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을 행동변화로 옮기지 못하게 된 원인을 현재 수준의 지식 및 관점을 투영하지 않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우리가 지금 그렇듯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지는 “비난의 전제가 아니라, 실증적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할 명제”이다.



     옥시싹싹가습기당번,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세퓨 가습기 살균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살균제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CMIT/MIT, PHMG, PGH 등 공장에서 만들어낸 화학물질이었다. 이들은 역학조사 과정에서 흡입독성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피해자들은 흡입으로 인하여 폐섬유증 등의 질환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옥시나 세퓨와 같은 기업은 어떻게 인간의 기도를 통과하는 제품에 독성물질을 사용할 생각을 했을까? 또한, 이러한 제품이 어떻게 규제 없이 소비자에게 판매될 수 있었던 걸까?



      공장에서 만들어진 화학물질은 공산품에 해당하고, 공산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에 의해 관리된다. 그러나 해당 법이 대상으로 하는 품목에 가습기 살균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화학물질의 독성 자체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의해 규제가 이루어지나, CMIT/MIT, PHMG, PGH 모두 ‘흡입 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검사를 면제받았다. 심사를 받을 당시 기존 용도는 카펫이나 고무 등의 항균제였기 때문이다. 이후 원료의 사용용도가 가습기 살균제로 변경되었을 때 원료에 대한 안정성 검사는 재실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옥시와 같은 기업은 이러한 규제의 빈틈을 악용한 것일까? 사실 옥시의 대표 및 연구소장은 가습기 살균제 제작 시 원료에 대한 흡입독성 실험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기존 살균제 원료로 사용하던 프리벤톨80를 PHMG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옥시는 흡입독성 실험을 위해 미국/영국 등지의 연구소에 접촉했었다. 그러나 실제 실험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채 PHMG를 사용한 살균제가 출시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옥시가 영국계 기업에 인수되면서 연구소 직원 감축을 포함 등 ‘집단적 기억의 소멸’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물론 그 이후 옥시는 소비자들의 유해성 관련 문의나 사내 규제 부서의 라벨 문구 변경 관련 지적에도 제품의 안정성을 제고하지 않았다. KBS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측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안정성을 검토할 만한 자료를 요청한 뒤 마케팅 부서가 응답의 필요성을 제시했을 때도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품공법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며,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환경부 소관이다. 즉, 원료와 제품에 대한 관장 부서가 달랐고, 이 때문에 PHMG 등이 기존에 허가받은 용도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파악하고 제재하는 것이 어려웠다. 자율안전확인 대상 공산품 안전기준에 대한 부속서가 개정됨에 따라 옥시는 자사의 옥시싹싹가습기당번에 대해서 시험 및 인증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지 확인했다. 옥시가 의도적으로 정부 규제를 회피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적시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아니라고 대답했다. 2000년, 2005년 환경부 용역 보고서에서 기존 화학물질 관리체계 및 법령 관련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환경부 전체가 이러한 보고서의 연구 결과에 ‘동기화’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후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살균제의 안정성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자, 민원에 대한 책임은 각종 부서를 넘나들었다. 부처 간 중재를 위해 설치된 국무조정실에서는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라 관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가습기 살균제는 품공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형식적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참사의 인과관계가 밝혀진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유해화학물질을 판매하고 적극 규제하지 않은 기업과 정부를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보고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PHMG 등의 사용은 조직의 악의가 반영된 결과는 아니었다. 불확실한 사항을 확실히 하지 않은 책임은 끝까지 물어야 하겠으나, 그 배경에는 조직의 위계적 구성, 절차적 정당성에의 안주, 혹은 조직 내/외부 환경—인수로 인한 직원 감축 등—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었다는 점 등이 그 조직이 마주한 ‘불확실성’을 해결하는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음 역시 인지해야 한다. 소비자나 방송국 등의 문제제기나 규제 부서 등의 문의가 조직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정부 부처들이 법령 상 규정된 방식으로만 행동했다는 사실은 ‘견고한’ 업무 처리 절차와 분담은 되려 새롭거나 경계가 불분명한 문제를 놓치게 만든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정 조직의 부도덕함에 대한 비난을 넘어, 조직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 요소를 파악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직에 속한 개인이 자신의 업무와 조직 전체의 방향성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조직의 업무 처리 과정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업무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중 루프 학습[1]과 성찰적 태도를 요청하는 교육이 학교에서도, 입직 교육 단계에서도, 조직 내에서도, 생애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반복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원도 조직 전체의 목표나 자신이 담당한 업무에 대해 환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규제 부서 등 전문성을 갖춘 담당자의 의견도 실제 결정권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현재 조직 구조에서, 조직의 말단에 있는 사람이 조직 전체에 대한 유기적 분석의 필요성을 쉽게 체감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의 피드백이 언제쯤 조직 문화상 유의미하게 수용될지에 대한 의문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해 우리는 모든 노력을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0] 홍성욱.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료적 조직 문화." 과학기술학연구 18.1 (2018): 63-127. Web.


[1] “Double-loop learning has a focus on the much more important deeper reflection on whether the right things are being done, such as why a particular room temperature has been chosen”

Murdoch-Eaton, Deborah, and Sandars, John. "Reflection: Moving from a Mandatory Ritual to Meaningful Professional Development." Archives of Disease in Childhood 99.3 (2014): 279-83. Web.



* <과학기술학의이해> 수업 제출용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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