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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Nov 10. 2020

환경을 복원한다는 것

청계천 복원은 성공적이었나?



         ‘복원’은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와 함께 다가오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숭례문 복원 사업 등 ‘문화재’ 복원에 가장 익숙할 테다. 이러한 복원 과정에서 문화재의 원형을 기억하는 이들은 복원된 문화재가 기존의 형태와 재질을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 복원에 사용된 기술이 얼마나 정교한지, 그리고 원형이 살아 숨 쉬던 당시의 역사는 얼마나 잘 반영되었는지 등을 자연스레 따지게 된다. 현재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보존과학자 C의 하루’라는 전시가 문화재와 예술품을 복원하는 데도 정교한 과학과 더불어 문화재가 만들어진 맥락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환경 복원의 경우에는 어떤 것들이 고려되어야 할까? 이를 탐색하기 위해 청계천 복원 사업에 관한 논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당시 한양)이 조선왕조의 수도가 된 이래, 청계천은 도로와 건물의 배치를 결정 지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을 구획하고, 마을에서 사용한 물을 흘려보내는 하수도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백성에 대한 영조의 관심이 청계천 관리 정책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잦은 범람과 악취로 인해 거주지로 크게 환영받지 못한 청계천은 일제 강점기부터 복개 사업이 추진되었다. 청-일 전쟁으로 인해, 그리고 청계천 주변 거주민들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사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하천 주변을 뒤덮었다. 그러던 1958년, 서울시는 본격적으로 복개 사업을 실행에 옮겼고 1977년 거대한 고가도로가 그 위에 건설되었다. 기존 하천 자리에 속속들이 모여든 건물들은 국가의 ‘근대화’의 산물이었다. 다양한 기계와 기계 부품을 사고파는 소상공인들이 청계천 주위에 터를 잡았고, 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식당과 카페, 숙박시설 역시 청계천 동네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선거 공약이었던 청계천 복원 사업에서 ‘복원’이 내포한 이미지는 여러 이해관계자와 시민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해석되었다. 이명박에게는 도시 개발 및 건설 사업의 일환이었고, 복개 사업 이전의 청계천을 기억하던 이들에게는 문화와 생태의 소생이었으며, 기술자나 조경 전문가에게는 복개된 하천이 야기해온 문제들—기술 및 외관상—을 해결하는 것이 곧 복원의 목표였다. 복원 사업을 지지하던 일부 시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복원 과정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자체의 회복은 우선시 되지 않았다. 하천의 발원지는 기존 산맥으로부터의 물줄기가 아닌 한강이 되었고, 강으로 흘러간 물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과 기술이 투입되었다. 청계천을 감싸고 있던 기술적 건설물을 해체한다는 명목을 가진 복원 사업 결과, 다시 자연-기술의 혼종이 완성된 것이다.




           복개사업이 진행되기 직전 무허가 판자촌의 모습, 정신없이 진행된 산업화 및 근대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청계천 사람들’의 삶, 각종 오수를 흘려보내는 하수도로서의 청계천의 모습은 복원 사업의 레퍼런스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당시 복원사업을 지지하던 많은 이들은 조선시대의 청계천이 21세기의 대도심에 조성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조선 왕조를 지탱하던 청계천 역시 오롯이 복원되지는 못했다. 여러 왕들이 하천의 범람을 막거나 교통의 편리성을 위해 설치했던 많은 다리들이 기존 위치에 복원되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수의 비평가는 복원된 청계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며, 3800억 원이 투입된 복원사업의 결과로 ‘비 장소성’을 역설했다.




           자연환경은 유기체이다. 그들은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인간이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할 역동성을 갖는다. 전시관 유리장 안에서 고요히 숨 쉴 수 있는 문화재와 예술품도 세심한 관심과 역사적 통찰, 보존을 위한 전문적 과학 기술을 요구하는 가운데, 하물며 자연환경의 복원은 어떠할까. 그러나 이명박과 복원 사업단은 청계천을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된 객체로 보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과학기술적 작동 논리 상(펌프를 통해 강물을 매일 길어 올릴 수 있는지 등)으로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청계천이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데는 복원 이전에 흐르던 물의 양이 적어 관련 생태계 역시 인간이 어느 정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규모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관점을 확장 적용한 4대 강은 거대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이로부터 우리는 환경 복원이 인간의 이해관계만을 담거나, 과학기술에 기반한 인간의 통제력을 증명하는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됨을 깨달아야 한다.










Jeon, Chihyung, and Kang, Yeonsil. "Restoring and Re-Restoring the Cheonggyecheon: Nature, Technology, and History in Seoul, South Korea." Environmental History (2019): Environmental History, 2019-08-23.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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