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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Nov 19. 2024

묵은 먼지를 털어내다

생각의 게으름

"주변 환경을 잘 가꿔야 해."

아들에게 방을 깨끗이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제 방에 제 물건이 아닌 게 너무 많아요. 쓸데없이 책상도 책장도 크고요.‘

자기 방 책장에 꽉꽉 들어찬 책 때문에 답답하다며 아들은 대꾸했다.


핑계 같았지만 아빠가 쓰던 가구(중역용, 체리색)를 물려받아쓰던터라, 같은 말을 몇차례 했던 것이 떠오르며 그제야 책장에 꽂혀있는 해 묵은 책과 물건들이 보였다.

책장에는 초등 고학년부터 중등 3년 동안 보던 아이의 책과 함께 나와 남편의 졸업앨범과 결혼앨범, 보험증서가 담긴 하드커버로 된 큰 서류들 뿐만 아니라, 몇 년 치 건강검진 결과지 등이 들어차 있었다.

아이 방이 제2의 창고처럼 쓰이고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내가 20년 전에 만든 가구(작품)까지 아이방에서 의자가 아닌 가방대로 어쩔 수 없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며, 아들이 수학여행을 간 3박 4일 동안 다 정리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래 네 물건이 아닌 건 싹 다 치워주겠다. 남겨진 네 몫은 온전히 네게 맡기겠다’는 오기도 있었다.


먼저 어릴 적 보던 아들의 책을 정리했다. 어린이 경제동화부터, 논술교재, 너무 좋아해서 반복해서 읽었던 윔피키드 등등 책장의 책들을 묵은 먼지와 함께 모두 끄집어냈다.

버릴 책을 먼저 골라내고, 당근에 팔 수 있을 것 같은 책들은 분류하여 묶음으로 당근에 올렸다. 퇴근 후 하루 저녁은 꼬박 작업을 해야 했다.


다음날 저녁은 나와 남편의 짐을 정리해서 창고로 옮겼다. 먼지가 가득 쌓인 무거운 앨범들을 옮기면서 아들에게 방을 잘 치우고 가꾸라고 잔소리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방치해 둔 책들처럼 아들에게 신경을 못써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럽고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내 작품 의자를 아들방에서 빼냈다. 작품을 보관할 창고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만 하며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분리하고 접어서 베란다쪽 창고에 넣을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동안 아이가 힘들다고 했던 말을 듣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살피고 소극적으로 응원하던 시간이있었다. 최근 아이가 내게 다른 엄마들처럼 입시를 적극적으로 챙겨주길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모습에 대견해하기만 했던 엄마였음이 또 부끄러워졌다.


아이 방을 정리하며 묵은 먼지와 함께 묵은 생각과 행동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의 방도, 입시도 큰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게으름의 결과임을 인지하고, 매일의 일상 속에서 생각, 판단과 행동을 미루지 말자고 다짐한다.


오늘은 미뤄둔 생각이 없을까? 다시 한번 되묻는다.


아들에게는 또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묵은 먼지와 함께 그동안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리렴.
가볍게 활기차게 한 발짝씩 복잡함을 정리해 가며 나아가렴.



아이가 걸어가는 자갈길의 돌을 치워주지는 말되,

함께 걸어가며,

어떨 때는 손도 잡아주고,

어떨 때는 뒤에서 밀어주고,

어떨 때는 앞에서 끌어주는,

현명하고 강한 어른이고자 노력하며,

부족한 엄마도 하나씩 배워가고 있음을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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