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자리, 나다운 리듬

by 아네스장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고 사적인 루틴으로



한동안,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기록을 멈춘 시간 동안

나는 점점 더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루를 보냈지만,

속에서는 무언가가 서서히 꺼지고 있었다.


익숙한 사무실 내 자리에서

음악을 들으며 10분이라도 책을 읽던 시간을 대신해

출근전 잠시 머물기 위해 카페에 갔다.


커피 한 잔,

빈 페이지의 화면,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나.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다시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았다.

짧은 문장 하나라도 적으면 좋고

적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다시

아주 작고 사적인 루틴 하나가 생겨났다.



시설안전관리팀이라는

뜻밖의 자리에서

설비, 전기, 방재, 건축 담당을 돌며

신입처럼 다시 시작해야 했다.


현장의 언어는 낯설었고

업무의 구조도 낯선 곳에서

나는 여전히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소방시설물은 ‘레드’, 전기 시설은 ‘옐로우’

기능보다 먼저 그 쨍한 색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나를 잃지 않고 싶다는 몸부림 처럼,

그 또한 예쁘게 봐주려 했다.



점심시간이면,

햇빛을 받으며 광합성 작용이 필요한듯 걸었다.

그러다 발견한 안식처 같은 장소들을

하나씩 발견했다.


따뜻한 햇살과 혼자만의 시간,

그 속에서 나라는 감각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 모든 순간들이

내 하루를 지켜준 리듬이었다.



이 글은 브런치북

《나답게 살아나는 중입니다》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단정한 루틴과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 시간들에 대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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