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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Apr 23. 2021

박카스가 필요한 날

일상을 글로 그립니다.

이사가 있는 주간이다.


이번 이사는 내 할 일이 너무 많고,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인제공을 한 남편을 원망할수록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이사를 앞두고 해외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고, 격리기간 끝자락에 이삿날이 포함되어 버린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남편도 애를 써보긴 한 것 같지만, 회사일에 스케줄 조정이 맘처럼 쉽지 않았을 것을 이해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모든 일을 독박쓰게 되면서, 괜스레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볼 때마다 얄미운 마음이 차오르는 것을 참아내고 있다. 이사 당일날 격리자는 차에 있어야 한다는 보건소의 지침이 더 화를 돗군다.

결국 사전 청소며, 이사 당일 일처리며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리 챙겨두어야 할 목록을 적어보고, 남편과 업무 분장을 하고, 각자 챙겨야 할 것들을 하나씩 챙겨보았다. 1박 2일 지방 출장까지 겹친 주간이어서 이동 중에 확인해야 할 것들을 전화로 확인하고 챙겨야 했다.


그렇게 이사로 인한 스트레스가 꽉 차있는 무렵,


아이가 카톡을 보내왔다.


엄마,

선물이 있어요 ^^

하며,


박카스 쿠폰을 보내왔다.


아이에게 받은 첫 카톡 선물이었다.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쿠폰을 어떻게 샀을지,

박카스는 카페인이 많은데... 하는 생각도 동시에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이가 내 생각을 해주었다는 것에 고마웠다.


중학생이지만 아직도 귀염귀염 하고 내게는 그저 아기 같은 아들인데,

요즘 남편의 자가격리로 내가 방을 강제로 빼게 되면서 아이와 같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밤에 이불을 깔고 한방에 누워서 서로 티격태격,

아이는 오랜만에 나와 자는 것이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그만 떠들고, 이제 그만 자자!'

너무 피곤해서 자자고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같이 자니 자꾸 수다를 떨고 싶어 진단다.


며칠 밤을 같이 자면서 밤이 늦도록 이불을 덮고 서로 애틋하게, 오랜만에 도란도란할 수 있었다.


아이가 받아주기만 한다면,

이런 시간을 종종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삿짐센터 인부들이 도착하고 수많은 박스를 집으로 들이는 순간이 되니 이제야 정말 이사를 하는구나 싶다.


남편은 지하주차장에,

아이는 학교를 갔고,

박스 포장하는 소리 틈에 서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이야말로 아이가 선물해준 박카스 한병 마셔야하는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의 공간을 기억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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