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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May 21. 2021

일인듯 로망 실현인듯

꿈이였나봐

진행하던 객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오픈일이 코앞이다.


오픈을 앞두고 체험 시숙 행사에 참여하였다. 공사 직후 객실은 먼지가 많을 수밖에 없어서 보통은 참여하지 않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먼지 좀 마시지 뭐~' 하고 신청을 했더랬다.


시숙을 같이 신청한 동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 쫓겨나듯 식당을 나왔다.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와 우리들의 끝없는 수다를 이어갔다. 미니바에 세팅된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고 제공된 드립 커피를 내리며, 미니바 기물의 세팅 상태, 디자인, 사이즈 조차도 우리에겐 즐거운 수다거리였다.


세팅하느라, 품평받느라 수십 번은 더 본 방이었지만, 어두울 때 느껴지는 방은 조명발을 받아 더 포근하고 아늑했다.


창가 데스크 체어에 앉아 수다를 떠는 동료를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아 바라보니, 조명 아래 동료가 너무 예뻐 보였다. 래도 예뻤지만 더 예뻐 보였던 것처럼, 조명발을 받은 방은 우리 눈엔 그저 예뻐 보였다. 그동안의 노력의 결과물이기에 부족해도 그 조명 아래 그저 예쁘게 봐주고 싶었다.




공간의 디자인에 좋고 나쁨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디자인을 어떤 매뉴얼이나 원칙에 따라서만 할 수는 없다. 콘셉트라는 큰 그림과 방향성을 가지고 어쩌면 너무나도 주관적인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들이 모여서 공간완성된다. 지만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어느 것 하나 그냥 결정되는 것 없다. 그렇게 주관적인듯하지만 그 나름의 최선의 것들이 모여 완성되는 디자인은 다시 주관적으로 평가된다.


공간에서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공간에 들어섰을 때의 공간감과 컬러감, 재질감과 안정감 같은 것들이 한 번에 느껴지면서 좋은 인상을 준다면 디자인이 좋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지... 품평 전에 사전 점검을 하면서 내 눈에 이상해 보인다면 지적 사항이 바로 나온다.  '사람 눈은 다 똑같다.' 주관적이지만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구현해 낼 때마다 아쉬움은 늘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 공간의 기능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공간이 너무 좁지는 않은지, 너무 덥거나 춥지는 않은지, 따뜻한 물, 찬물은 잘 나오는지, 조명은 잘 켜지꺼지는지, 가구의 사용성이 좋은지 같은 기본적인 기능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그냥 눈으로 보는 평가를 할 때와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될 수 있다.

드라이 런(체험 시숙)의 목적은 이러한 것들의 점검을 통해 실제 오픈전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전실, 침실, 욕실 등 실별 전기, 설비, 가구, 벽체, 바닥, 천장의 상태 양호, 불량, 개선사항 등을 크한다. 이렇게 각 실별 점검 상태를 취합하여 오픈전에 개선 가능한 것들을 보완한다. 드라이 런을 하다 보면 그냥 봤을 때 숨겨져 있었던 문제점들이 먼저 드러나고, 오픈 후 1개월 안에 문제가 있는 것들은 대부분 드러난다. 이렇게 드러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완하느라 오픈 후는 오픈 전보다 더 부산하고 바빠진다.


심적으로는 오픈을 했으니 한시름 놓고 싶지만, 현실은 더 예민한 상태가 되기 일수이다. 오픈 후 드러나는 문제는 고객에게 바로 노출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수습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객실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던지, 공조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던지, 물이 안 나오는 등의 큰 문제부터 멀쩡하던 의자의 다리가 부러진다던지 하는 하자건, 또는 가구나 쿠션이 더 있으면 좋겠다던지 하는 등의 운영하면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보완 요청이 발생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인데, 연락이 오면 이번엔 또 무슨 일일지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단순한 하자이면 다행이지만 안전사고와 관련이라도 있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수다를 떨다 혼자 남은 방에서 욕조에 물을 받고, 물은 잘 나오네... 수전 작동도 잘되네.... 물에 찌꺼기가 좀 섞여 나오네.. 하며 여러 차례 물을 받아 버린 후에야 욕조에 들어앉아 쉴 수 있었다. 욕조 옆으로 난 유리벽으로 객실이 보이는 디자인의 매력을 느끼며, 대리석과 타일을 적절히 잘 섞어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투자비를 낮출 수 있었을 방법이 적용된 것을 보며, 맑은 바탕에 수채화 물감이 번진듯한 패턴을 지닌 세면대 상판의 대리석 퀄리티를 보면서, 이 돌을 골라내려고 얼마나 또 노력을 기울였을지... 그런 하나하나의 과정이 다 떠올랐다.

호텔 가운을 걸치고 나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라운지체어에 앉아 다이어리 정리도 하면서 둘러보는 객실은 볼수록 더 예쁘고, 밤에 보니 더 예쁘고, 창에 드리워진 커튼도 예쁘고... 그냥 그렇게 예쁘다고 해주는 시간을 보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암막커튼을 쳐서 완벽하게 빛을 차단한 후 푹신한 침대에 누우니 몸이 침대에 빨려 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꿀 같은 혼자만의 밤을 보낸 후, 미리 잡아놓은 현장 미팅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니 전날 밤이 더 비현실적이게 느껴다.


가구 흔들림을 잡는 방법을 협의하고, 추가로 필요한 가구가 놓일 공간의 치수를 확인하고, 뭔가 모를 이유로 세팅이 풀린 전동커튼 리모컨 세팅을 다시 부탁하고, 내일 세팅할 쿠션과 빼갈 가구 일정을 협의하고.... 오전 새에 전날 밤 충전한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았다. 그래도 바로 주말이니 다행인, 현실의 위안을 찾아 다시 힘을 내본다.   


이번 투숙은 로망이 실현된듯하다가 꿈에서 깨어보니 결국 일터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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